[뉴스의 맥] 격변 예상되는 국제통화질서…상시적 환율전쟁 대비해야

입력 2017-11-21 18:19  

2018 글로벌 금융시장 전망

IMF, 내년 세계경제 3.7% 성장…10년 만에 '인플레 갭' 예상
미국 Fed 자산매각 등 '통화정책 전환'…시장금리 급상승 우려
트럼프 정부 보호주의 강화…달러가치 큰 폭 상승은 어려울 듯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매년 이맘때면 모든 경제주체는 다음해 경제전망을 토대로 사업계획을 짠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10년째를 맞는 내년에는 추세적인 변곡점과 새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선제적인 대응 여부에 따라 경제주체별로 명암이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변화는 각국 중앙은행 수장이 교체된다는 점이다. 위기 극복의 적임자 역할이 끝나가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재닛 옐런에서 제롬 파월로 넘어간다. 중국 인민은행 은행장은 저우샤오촨에서 궈수칭으로 교체된다. 내년 4월에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도 끝난다.

통화정책 여건도 변화한다. 내년에는 세계 경제가 10년 만에 ‘디플레 갭’에서 ‘인플레 갭’으로 전환될 첫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디플레 갭은 실제 성장률에서 잠재 성장률을 뺀 것이 ‘마이너스’, 인플레 갭은 ‘플러스’일 때를 말한다. 전자 국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리플레이션은 경기에 호재가 되지만 후자 국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은 악재다.


절대오차(전망치-실적치)로 평가한 전망기관별 예측력에서 가장 높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3.7%다.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세계경제 잠재 성장률은 3.6% 안팎으로 GDP 갭을 구하면 +0.1%포인트로 나온다. 10년 만에 디플레 갭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온다.

물가가 실물경기와 자산시장에 부담이 된다면 출구전략(통화정책의 정상화)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Fed는 2014년 10월 양적완화(QE) 중단, 2015년 12월 이후 네 차례에 걸친 금리 인상에 이어 올해 10월부터 ‘보유자산 매각’이라는 출구전략의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피할 수 없게 된 통화정책 동조화

일부에서는 ‘보유자산 매각이 두렵지 않다’는 시각이 있으나 9년 만에 이뤄지는 ‘통화정책의 대전환’인 만큼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9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도 미국에서 이탈한 자금이 국내 증시에 유입되면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을 토대로 주식 매입을 권유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투자자에게 커다란 손실을 가져다줬다.

정책금리 인상과 달리 보유자산 매각은 시장금리를 끌어올린다. 2015년 12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인상했지만 오히려 시장금리는 떨어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재현됐다. 하지만 보유자산을 처분하면 시장에 채권공급이 늘어나 채권가격은 떨어지고 반비례 관계에 있는 시장금리는 올라간다.

다른 중앙은행도 출구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자국의 금융시장과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의 동조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중앙은행에 이어 영국 중앙은행이 10년 만에 정책금리를 올렸다. Fed의 보유자산 처분에 맞춰 유럽중앙은행(ECB)도 내년 1월부터 매월 국채매입 한도를 300억유로로 축소할 계획이다.

환율 등 각종 금융변수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Fed의 금리 인상에도 달러 가치는 ‘강세’보다 ‘약세’를 나타났다.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유자산 매각을 추진한다면 시장금리는 올라(보유자산 매각→채권공급 증가→채권가격 하락→채권금리 상승)간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여건에 비해 낮은 저금리 국면이 오랫동안 지속됨에 따라 세계 경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부작용이 날로 심각해져왔다. 대표적으로 금융차입 비용이 실물투자 수익률보다 값싸 보이는 ‘부채 경감 현상(debt deflation syndrome)’으로 발생한 자산거품을 해소하기 위해 각국이 엄청난 정책비용을 치르고 있다.

과도기적인 현상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재정지출과 감세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단기적으로 재정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예상대로 국채로 메운다면 투자자의 과다보유 채권물량까지 한꺼번에 겹치면서 시장금리가 의외로 빨리 올라갈 수 있다. 달러 가치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빨라지는 脫달러화 현상도 주목

하지만 앞으로 달러 가치가 회복하더라도 달러 투자를 할 만큼 큰 폭으로 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국익 우선의 보호주의를 추진해 무역적자를 축소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강세로 무역적자가 다시 확대된다면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과 정면으로 충돌된다.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화 조짐도 주목된다. 세계 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던 문제점이 가시화됐다.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글로벌 불균형 조정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화보유 부담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현재 국제통화제도는 1976년 킹스턴 회담(길게는 스미스소니언 체제 포함) 이후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국가 간 조약이나 국제협약이 뒷받침되지 않아 ‘없는 시스템(non-system)’ 또는 ‘젤리형 시스템(jelly system)’으로 지칭된다. 그 결과 킹스턴 회담 이후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이전보다 느슨하고 불안한 형태로 유지돼왔다.

'환위험 관리'에 신경 써야

시스템이 없는 국제통화제도에서는 기축통화의 신뢰성이 저하되더라도 이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새로운 기축통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는 없다. 유일한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대외불균형을 시정하려고 하지만 무역흑자국은 이를 조정할 유인이 없어 환율전쟁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국제통화제도 개혁에 공감하는 학자는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예컨대 플라자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회담에서 ‘경상흑자 4% 룰’(GDP 대비 4%를 웃도는 경상흑자국은 외환시장 개입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 합의된 것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상시적인 환율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환위험 관리가 내년 외화관리의 키(key)가 될 가능성이 높다.

■ 트리핀 딜레마

Triffin’s dilemma.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성 간의 상충관계를 말한다. 중심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부채 증가로 신뢰성이 떨어져 공급된 통화가 환류되는 메커니즘이 떨어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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