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항공기정비 지연에 배상금을?…거꾸로 가는 '안전운항' 우려

입력 2017-11-23 10:51   수정 2017-11-23 14:01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추진 중인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이 항공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항공기 운항 지연 시 배상금 지급 면책 사유 중에서 정비 관련 부분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항공기 정비 지연을 면책 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사업자 위주의 시각이란 지적에서다.

항공업계는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공정위의 이 같은 조치가 자칫 항공사의 적극적인 안전점검과 안전운항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사 관계자는 "항공기는 수백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첨단장비이기 때문에 무결점의 항공기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항공사가 국제기준에 따라 정부에서 인가 받은 정비 프로그램으로 예방 정비와 사전 정비를 철저히 수행하더라도 예측하지 못한 정비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 규범과도 맞지 않아 국내에 취항 중인 외국계 항공사들의 반발 역시 가능하다는 것. 실제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공정위에 반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항공운송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협약에 따르면 '항공운송사업자가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했거나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에는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민간 항공사 협의체인 국제항공운송협회도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달 초 공정위로 보낸 공식 입장에서 '항공기의 기술적 문제 등으로 인한 안전 관련 지연 및 취소는 항공사의 통제 범위 밖 상황으로 항상 간주돼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안전을 최우선 상황으로 고려해야 하며 불필요한 압박을 가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항공업계는 이러한 지적 사항 등을 감안하면 공정위에서 추진 중인 정비 지연에 대한 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안전 운항'과 상충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항공사업에 관한 제반 사항을 규율하고 있는 항공사업법 제12조 1항에 따르면 예견하지 못한 정비를 면책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법 제907조에서도 몬트리올 협약을 준용해 운송인의 합리적 조치에 따른 면책 규정 등 정비 사유를 면책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은 그러나 소비자와 사업자 간 분쟁 해결을 위한 권고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하위 개념인 고시 변경을 통해 예견하지 못한 정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상위법에 반하는 모순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공정위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80여개 인천공항 취항 항공사 연합체인 항공사운영위원회(AOC),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한국지사 등을 만나 정비 면책 조건 제외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국내외 항공사들은 안전 등 문제점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명한 상태다.

또 다른 항공사 관계자도 "안전운항은 항공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라서 이를 위해 정부 인가까지 받은 사전예방적 정비를 필수적으로 해오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정비를 면책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안전 운항은 물론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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