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 깊은 산 속 소나무 군락지. 황진숙 푸새&G 대표(55)의 농장은 이 소나무 줄기 사이 산비탈에 잡풀을 걷어내고 만든 곳이다. 황 대표는 해발 700m가 넘는 산을 매일 오르내리며 산양삼(장뇌삼)과 산나물을 키우고 있다. 산 속 재배 단지는 38만평(약 126만㎡), 대부분 국유림이다. 서울 성동구에 조성된 서울숲(35만평)보다 크다. 서울에 살던 황 대표는 어떻게 방대한 땅을 빌려 연 평균 매출 5억원을 내는 임업 경영인이 됐을까. 농사의 ‘농’자도 몰랐던 그가 어떻게 홀로 귀농해 18년 동안 산양삼을 키워냈을까. 황 대표를 그의 농장에서 만났다.
▷주로 키우는 작물은 뭔가요.
“대부분 산양삼이고요. 곰취 곤드레 산마늘(명이나물) 눈개승마(삼나물) 같은 산나물도 하지요. 여기 환경이 험하다고 하는데 맞아요. 그래서 그 환경을 이겨낸 작물들의 맛과 향이 더 뛰어난 거예요. 산 속에서 키우니 그대로 친환경이고요. 화학 비료나 농약도 안 씁니다.”
산양삼은 ‘사람이 키운 산삼’이다. 자연산 산삼은 귀하다 보니 그 씨앗을 산에 뿌려 재배한 것이다. 인삼과는 달리 차광막을 씌우지 않고 산에서 자연 상태로 키운다. 여름에 서늘한 곳, 햇빛이 산란해 비치는 곳을 산양삼 재배에 최적지로 본다.
황 대표는 이렇게 키운 산양삼을 발효시켜 발효산양삼 상품, 발효산양삼 진액, 발효산양삼 대보환 등으로 판다. 대학 연구팀과 산양삼 발효 기술을 함께 개발해 가공품 특허도 냈다. 2015년 산림사업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고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됐다. 올해는 산림청의 산양삼 재배단지 조성 시범사업을 맡아 대규모 단지를 꾸리고 있다.
▷이 산이 산양삼을 키우기에 좋습니까.
“토양이 좋고, 일교차가 큽니다. 그래서 유리합니다. 그렇다고 온 산에 다 산양삼을 재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해가 많이 들어오는 곳은 안 돼요. 더덕을 심든지 다른 걸 해야 합니다. 사실 국유림을 빌려도 실제 심을만한 땅은 그 절반도 안 돼요. 너무 습한 곳도 못 쓰고, 잘 나와야 절반이죠.”
▷산양삼은 어떻게 키웁니까.
“보통 산에 씨 뿌리고 6년이 지난 후부터 약효가 있다고 봐요. 저도 6년근부터 7년근, 8년근. 12년근까지 키웁니다. 오랜 시간, 산골짜기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자란 삼이에요. 6년 넘게 키우면 그냥 다 내 새끼 같아요. 진짜 애지중지하게 돼요.”
6~7월이 되면 산양삼 씨앗열매가 빨갛게 영그는데 심마니들은 이 열매를 ‘딸’이라고 부른다. 이 열매를 따서 껍질을 벗긴 후 모래 속에 묻어 놨다가 싹이 나오면 다시 땅에 심을 수 있다. 산양삼 1년생은 작은 잎 다섯장이 아기자기하게 나와있는 모양이다. 해가 지날 수록 잎은 더 풍성해진다. 토질이 비옥할수록 산양삼은 더 크게 자란다. 보통 특유의 향이 강하고 오래 씹을 수록 단맛이 나는 삼을 좋은 산양삼으로 친다.
황 대표는 지난 2000년까지만 해도 서울에 살았다. 몸에 좋다는 말에 한번 얻어 먹었던 산양삼의 매력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취미 삼아 직접 키워볼까 했던 게 시작이었다. 강원도 영월에서 지인들이 꾸리고 있는 산양삼 농장 일에 합류했다.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4년 가량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평생 산에도 안 다녀봤던 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산이 너무 좋더라고요. 산에 완전히 빠진 거죠.”
▷뭐가 그렇게 좋았습니까.
“그 때는 제가 산을 다 뛰어 다녔어요. 그 가파른 비탈길을 신나서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사실 뭘 몰라서 그랬지 지금 같으면 무릎 아파서 절대 못 해요(웃음). 산양삼 배우는 게 참 재미있었어요. 산 지리라는 것도 그 때 처음 익히고요.”
▷적성에 맞았나 봅니다.
“삼 묘종 심을 때도 손이 너무 빠르다고 했어요. 평생 농사라곤 지어본 적이 없는데 옆에서 같이 일하는 아저씨가 ‘아줌마는 몇 년 했어요’ 묻습디다. 남의 눈엔 처음 하는 솜씨가 아닌 거예요. 나는 처음부터 일 못한다 소리는 안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산양삼 재배를 해보자고 결심하고 찾은 곳이 지금 정선군의 임계리였다. 말리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귀농을 결심했다. 인근 주민들의 동의를 얻으면 국유림을 빌릴 수 있다는 정보를 얻어 연 10만원을 내고 국유림 10ha(약 3만평)를 대여했다.
▷어떻게 혼자 귀농할 엄두가 났습니까.
“처음엔 서울에 계신 어머니가 저 시골에 혼자 둔 게 마음에 걸린다고 우시고 그랬지요. 하하. 저는 운이 좋았던 게 국유림을 그래도 쉽게 빌렸어요. 그런데 어떤 분은 귀농하자마자 전재산을 털어서 산을 사요. 그렇게 하면 막상 필요할 땐 돈이 없어요. 전 산부터 사지 말라고 합니다. 우선 국유림 이용해서 작게 해 보고 필요하면 더 사라고 말해요. 제가 해보니까 그렇더라고요.”
황 대표도 귀농 초반엔 실수가 많았다고 한다. 산양삼을 키워 돈을 벌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6년. 그런데 처음에 모든 산에 산양삼만 심었다. 다 투자하니까 남은 돈이 없었다. 몇년 간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4년 동안 남의 산에서 산양삼 일을 배운 경력이 있었지만 직접 농장을 경영하는 것은 또 달랐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정선 시장에 나가봤더니 산나물이 많더라고요. 산나물은 그해 바로 수확이 돼요. 돌아와서는 곰취와 산마늘 같은 나물들을 심었어요. 이 산나물로 산양삼 처음 출하할 때까지 생활비를 벌었어요. 나물들이 몇년 간 절 먹여 살린 셈이지요.”
▷산양삼을 첫 수확했을 때 감개무량했겠습니다.
“산양삼은 오래 키워야 하는 거다 보니 반타작도 안 돼요. 10년근이면 씨 뿌렸던 거에서 실제 상품으로 나오는 건 한 10% 봐요. 여름에 서늘하지 않으면 죽거든요. 가뭄도 너무 타고요. 쥐가 다 갉아먹기도 하고 산양삼 도둑도 있어요. 씨를 뿌리고 다시 흙으로 잘 덮어야 하는데 그걸 실수해서 새들이 다 파먹은 적도 있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의 일을 10년 넘게 하면 프로가 된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해서도 심어보고, 저렇게 해서도 심어보고, 지금은 노하우가 생겼어요. 어떻게 하면 가뭄을 덜 타는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작업하는 데 편한지 다 몸으로 겪으면서 알아낸 거죠. 지금은 임업진흥원에서 지정한 산양삼 멘토로 조언하고 있어요.”
사실 황 대표가 저절로 산양삼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니다. 긴 시간, 오랜 노력이 있었다. 2009년엔 강원농업마이스터대 특용작물과에 입학해 인삼을 전공했다. 10년 가까이 몸으로 부딪히며 겪은 현장이지만 아직도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교를 다닌 게 도움이 됐습니까.
“그 때 가공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산양삼 발효를 하면 그냥 먹을 때보다 몸에 좋은 사포닌 성분이 흡수가 잘 된다는 논문이 있어요. 앞으로는 발효가 대세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산양삼은 발효가 잘 안 돼요. 진액이 안 되면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대학 연구팀에 들어가 산양삼 발효를 연구했습니다.”
▷성공했나요.
“특허까지 받았지요. 저 혼자 한 건 아니고 평창에 있는 전문가와 세명대 연구팀과 같이 연구했습니다. 그걸 상품으로 개발해 내놓은 게 발효 산양삼 진액, 발효 대보환, 발효 산양삼입니다. 지금은 이게 우리 효자 상품이에요. 내년엔 산양삼 발효주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사실은 올해 하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못 했어요.”
▷산양삼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습니까.
“가장 최근에 개발해 특허를 받은 게 산양삼 누룽지예요. 산양삼 중에 찍히고 부러져서 생물로는 못 나가는 것을 모았다가 분말로 만들었어요. 그걸로 누룽지를 제조한 건데,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고 몸에도 좋지요. 이런 구상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산양삼 발효 제품의 해외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가공이 안 된 산양삼 생물은 위생 검역이 까다롭고 유통기한도 짧아 수출이 어렵지만, 가공한 상품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게 황 대표의 판단이다. “시장 조사 차 홍콩과 중국 광저우를 가봤는데 사람들이 산양삼에 큰 호감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물량입니다. 꾸준히 공급할 물량을 확보하려면 그만한 재배 면적이 필요합니다.”
황 대표의 농장은 올해 산림청의 산양삼 대규모 재배단지 시범사업장으로 선정됐다. 원래 산림법에선 임업 법인 당 국유림 10ha(약 3만평)씩 빌릴 수 있는데 황 대표는 이번 시범사업으로 재배단지 100ha(약 30만평)를 추가로 경영하게 됐다. 그는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우리 임업인들이 요구하는 게 국유림 임대 규모가 더 커져야한다는 거예요. 저처럼 수출을 하려고 해도 재배 규모가 작아서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이번에 시범으로 잘 해야 다른 임업인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방대한 산양삼 재배 단지를 관리하고, 상품을 개발하고, 수출을 추진하는 일까지 도맡아 하는 게 버겁지 않느냐는 질문에 황 대표는 웃었다.
“저는 처음 농사를 시작해서 산을 뛰어다녔을 때보다 지금이 더 흥분돼요. 사실 요즘도 산에 가서 풀 다 뽑고, 낙엽 다 정리하고 난 다음에 흙을 슬쩍 만지면서 혼자 좋아해요. 즐겁지 않으면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하겠어요. 운도 좋았지만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못 해왔을 겁니다.”
정선=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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