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장기파동기 정권의 운명

입력 2017-11-23 18:08  

"'환란 20년'에 데자뷔 경고음만
뭘 믿고 '20년 집권' 운운하는지
장기파동 밀려나면 정권도 없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한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3%대로 올라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등공신은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이끌고 있는 반도체 수출이다. 대기업, 수출의 ‘낙수효과’는 없다고 단언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고무된 모습이 한편의 ‘아이러니’ 같다. 정책 따로, 현실 따로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한국 경제가 내수, 중소기업으로 성장할 길이 열린다면 백번이라도 환영할 일이다. 정부·여당은 과연 그쪽으로 성장정책을 펴고 있을까. 내수를 말하지만 의료·금융·유통 등 서비스업 규제를 풀 의지는 전혀 없다. 중소·벤처를 강조하면서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국민 세금을 동원한 ‘기업 복지’ 쪽으로 질주하는 것도 그렇다.

위기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성장 대안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는 정부·여당이 노동·공공부문 등에서 구조개혁은커녕 아예 역주행을 시작했다. ‘환란 20년’에도 들려오는 건 ‘데자뷔’ 경고음뿐이다. 올해보다 내년, 내년보다 5년 후 한국 경제가 더 불안하다는 소리가 넘쳐난다.

별나라 세상은 정부·여당뿐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이 20년 집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해찬 민주당 의원의 ‘진보진영 20년 집권론’을 떠올리게 한다. 보수야권의 지리멸렬함을 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꿈을 꾸는 건 자유다. 똑같은 근거로 ‘새누리당 장기집권론’을 펼쳤던 박근혜 정권이 어찌 됐나. 여론이 어떤 계기를 만나 폭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박근혜 정권이 경제문제 해결에 성공했어도 그 지경이 됐을까. 민주당도 경제에 무능하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 여론이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세계경제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이 실현한 행복한 시대, 이른바 ‘황금시대’로 불린다. 그걸 가능하게 했던 건 ‘성장’이다. 거꾸로 말하면 성장을 못 할 경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 갈등이 빚어진다는 얘기다. 정권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이 정권의 운명을 걸겠다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다. 청년 맞춤형 취업대책을 쏟아내지만 전체 실업률을 낮추지 않고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한 나라는 없다. 그 역시 성장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20년 집권’을 꿈꾸는 민주당은 ‘20년 성장’의 비전이라도 갖고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을 들고나왔다”는 답이 돌아올 수도 있겠다. 시장은 냉정하다. ‘말’로 하는 산업혁명과 ‘행동’으로 하는 산업혁명을 금방 알아차린다. 이미 정부·여당의 정치 시계는 다가올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맞춰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20년 성장’이라면 ‘상승’과 ‘하강’의 사이클로 볼 때 ‘40년 장기파동’에 해당한다. 불행히도 민주당은 20년 집권에만 골몰할 뿐 장기파동이 갖는 무서운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는 50년 내외 장기파동을 발견했고, 조지프 슘페터는 거대 신기술 출현과 신산업 형성이 ‘콘드라티예프 파동’의 동인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장기파동이 제발로 걸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제개혁’ ‘제도혁신’ 여부에 따라 국가 운명이 엇갈리는 ‘전환기’를 꼭 거친다는 게 카를로타 페레즈의 관찰이다.

한국이 전환기를 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장기파동 안에는 그보다 짧은 키친(3~4년), 주글러(10년), 쿠즈네츠(20년) 등의 파동이 있다. 아르투어 슈피트호프의 역사적 발견 등을 끌어오면 일단 장기파동 상승 국면에서 밀려날 경우, 짧은 주기 파동이 오더라도 의미 있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등 선진국은 콘드라티예프 장기파동 상승에 쿠즈네츠, 주글러, 키친 등 중·단기파동 상승까지 겹치는 ‘골든 사이클’을 놓고 경쟁한다는 판국이다. 역사적으로 국가 운명이 엇갈린 건 한순간이었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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