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수출 1위가 메모리반도체?…이 기업 때문이라는데

입력 2017-11-23 19:49   수정 2017-11-24 05:46

한국 유일 메모리반도체 팹리스업체 제주반도체

박성식 대표 "매출 1000억 눈앞"
삼성서 안만드는 저사양D램 설계
보급형PC 등에 쓰여 8조 시장
"한적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
2005년 세제 혜택 있는 제주도행

직원 100명중 60명이 연구직
벌어놓은 현금 쏟아부으며 2007년 불황 때도 D램 개발



[ 노경목 기자 ] 제주의 수출 1위 품목은 가자미 등 생선도 감귤도 아니라 메모리반도체다. 지난해 3551만달러를 수출해 전체 품목 중 33%의 비중을 차지했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오른 올 상반기에는 비중이 43%까지 높아졌다. 이처럼 ‘엉뚱한 결과’의 이면에는 한국 유일의 메모리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 제주반도체가 있다.

박성식 제주반도체 대표(사진)를 23일 경기 판교의 회사 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창사 이래 처음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라며 “내년 주문도 상당 부분 받았는데 올해 못지않은 실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제주반도체는 2기가비트(Gb) 이하의 저사양 D램을 설계해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에 생산을 맡긴다. 저사양 제품이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서는 만들지 않지만 보급형 PC와 스마트폰 등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 규모가 8조원에 이른다. 저사양이지만 새 제품을 개발하려면 40억원 안팎이 들어간다. 영세화된 한국의 팹리스업계에서 제주반도체를 제외하고 메모리반도체를 제작하는 곳이 없는 이유다.

박 대표는 2000년 서울 잠실에서 창업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엔지니어와 영업을 담당하다가 S램(D램보다 집적도가 낮은 메모리반도체)을 만드는 팹리스로 독립했다. 마침 PC 확대로 메모리 수요가 늘어났다. 한 해에 100억원 안팎을 벌어들였다. 2005년에는 제주로 이전했다. 수도권 기업이 충남 천안 이남으로 이전하면 일정 기간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조세제한특례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60명이던 사원 전부 제주도로 옮겨갔다.

박 대표는 “차 타고 대전 가는 시간이나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는 시간이나 비슷하다고 판단했다”며 “한적한 곳에서 직원들과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창업 초기부터의 욕구도 이전을 결심하게 한 이유”라고 말했다.

항로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S램만으로는 힘들겠다고 판단해 D램 기술 개발에 나선 2007년 반도체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후 2년간 제주반도체는 D램 개발에 400억원을 쏟아부었다. D램 핵심 기술을 보유한 램스웨이를 200억원에 인수한 것도 이때다. 2005년만 해도 700억원에 가깝던 보유 현금이 눈녹듯 사라졌다. 그동안 박 대표는 회사에서 봉급을 한푼도 가져가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원 급여만은 깎지 않았다. 이때 함께한 연구인력은 제주반도체가 난야 등 대만의 주요 저사양 메모리반도체 제조업체들과 나란히 경쟁할 정도로 성장하는 밑천이 됐다. 제주반도체 직원 100여 명 중 연구인력은 60명이다. 판교에 있던 램스웨이를 인수하면서 이 중 절반은 수도권에서 일하고 있지만 제주반도체는 ‘토종 인력’ 양성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제주대는 제주반도체에서 기부받은 돈을 바탕으로 2005년부터 ‘제주반도체 트랙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으로 3학년부터는 제주반도체에서 메모리반도체 설계 실무를 배운다. 이 중 3~4명이 매년 제주반도체 연구원으로 취업한다.

제주반도체는 내년 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XMC 등 중국 반도체업체들이 내년 말부터 저사양 D램을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중국 업체들은 아직 시장이 작아 자체 브랜드 제품만 생산하기엔 설비가 남을 것”이라며 “남는 설비를 우리 파운드리로 이용하는 전략을 거의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제주반도체는 월말 기준으로 현금 보유액을 100억원 수준으로 유지하고, 내다팔 수 있는 재고 제품도 확보해 놓는 등 언제 불어닥칠지 모를 불황에 대비하고 있다. “앞으로 또 고생해야 할지 모르는데 돈을 많이 번 2005년 회사를 정리하지 그랬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기업을 시작한 이상 직원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은 볼 수 없었다”고 답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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