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감산·중동 불안에
키스톤 송유관 유출 사고 겹쳐
WTI도 배럴당 60달러 근접
사우디, 9개월 추가 연장 추진
러시아는 미국 셰일오일 증산 견제
러 석유 기업들 "감산 끝내야"
[ 박상익 기자 ] 오스트리아 빈에서 오는 30일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에 세계 석유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이 내년 3월로 예정된 감산 기한을 연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변수가 없진 않다.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을 견제하고 있는 러시아 석유회사들이 당초 알려진 9개월 연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감산 연장 합의 여부와 연장 기간에 따라 국제 유가가 다시 출렁거릴 가능성이 있다.
◆WTI, 2년5개월 만에 최고치
지난 6월 하순 배럴당 42달러 선까지 떨어진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의 내년 1월 인도물 가격은 지난 22일 배럴당 58.02달러로 반등했다. 2015년 6월30일 이후 2년5개월 만의 최고치다.
유가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주요 원인은 사우디 등 산유국의 감산 및 수출 통제 정책, 이라크·베네수엘라 등의 정치 급변으로 인한 생산 감소 등이 꼽힌다. 16일 미국 최대 원유 파이프라인인 키스톤송유관에서 유출 사고가 발생해 원유 공급이 일시 중단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WTI도 배럴당 60달러 선을 돌파한 두바이유와 북해산 브렌트유 뒤를 따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회원국은 지난해 감산 합의에 따라 원유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회원국은 지난해 10월 대비 하루 평균 120만 배럴, 비회원국은 55만8000배럴을 감산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감산 기한을 내년 3월로 연장했다. 사우디의 의지가 강해 빈 총회에서도 감산 재연장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의 연장 동참이 변수
감산 재연장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 내 셰일오일 증산과 러시아다. 유가가 지금처럼 상승세를 유지하면 미국 내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일부 전문가는 매일 150만 배럴을 수출하는 미국이 당장 내년부터 하루 생산량을 100만 배럴 더 늘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주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970만 배럴이었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15일 자국 석유회사 대표자들을 만나 감산 연장을 논의했다. 지난 10월 초 살만 사우디 국왕을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사우디와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 감산 연장을 시사했다.
그러나 러시아 석유회사들은 감산 조치로 국제 유가가 적절한 수준에 오를 때마다 미국 셰일업계가 세계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감산 연장이 러시아보다 OPEC 산유국에 유리한 일이라며 달갑지 않은 기색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원유 생산단가가 세계 최저수준이어서 많이 팔수록 이익이지만 생산량을 줄이면 그만큼 이익이 줄어든다.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와 2위 기업인 루코일은 감산 재연장이 이뤄지면 신규 시추를 연기하거나 보유 자산을 매각해야 할 처지라고 토로했다. 일부 회사는 아예 감산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감안한 러시아는 자국 석유기업과 6개월 연장안을 협의했다. 크리스 위퍼 매크로어드바이저리 선임연구원은 “미국 셰일산업은 누구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대놓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방안의 코끼리’ 같은 존재”라며 “미국이 증산을 계속한다면 러시아 석유기업들도 향후 몇 개월 동안 매일 30만~40만 배럴을 오히려 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가 리더십 발휘할까
몇 가지 변수에도 불구하고 빈 회의에서 감산 연장이 합의될 것이라는 예측이 여전히 우세하다. 사우디는 러시아 측의 협조를 잘 이끌어내면 감산 재연장이 무난히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9개월 연장할지, 6개월 늘릴지를 놓고 줄다리기할 가능성은 높다.
OPEC 맹주인 사우디는 내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60달러 이상을 유지해야 IPO로 만족할 만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빈 총회에서 감산 연장을 이끌어내 유가를 밀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도 자신이 주도한 숙청과 이에 따른 정치 불안 속 개혁 드라이브를 유지하려면 빈 총회에서 리더십을 국제 사회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미 CNBC 방송은 “32세의 왕세자로선 매우 중요한 시기에 OPEC 회의가 열린다”고 보도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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