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 "품질좋은 와인 싸게 살 수 있어 좋다"
시장 1위 금양은 매각되고 길진인터는 회생절차 신청
설 땅 좁아진 와인수입업계 "신세계, 공정 경쟁하라" 공문
[ 이유정 기자 ]
국내 와인시장은 2000년대 초 ‘웰빙 바람’을 타고 커지기 시작했다.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로 가격이 떨어지고, 와인을 소재로 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이 인기를 끌면서 시장은 더욱 달아올랐다. 2007년 와인 수입액(1억5036만달러)이 처음으로 1억달러를 돌파하자 국내 주류시장은 ‘와인 천하’가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10년이 흐른 지금 분위기는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다.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전년보다 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 들어서는 수입량(10월 누적)이 6.7% 줄었다. 수입량 감소는 2010년 이후 처음이다. 와인 수입업계도 이익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5월엔 와인 수입업계 6위인 길진인터내셔널이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기도 했다. 2009년 시장에 진출한 신세계발(發) 지각변동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와인 수입량 올 들어 감소
품질 좋은 와인을 발굴해 국내 와인 열풍을 이끌었던 10위권 와인 수입사들은 대부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상당수 업체가 매출 정체와 이익 감소를 겪고 있다.
길진인터내셔널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무렵 업계 1위 금양인터내셔널은 건설사인 카뮤이앤씨에 매각됐다. 연간 180억원대 매출을 유지하고 있는 신동와인은 2011년 11.9%에 달했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1.5% 수준으로 급감했다. 금양인터내셔널과 아영FBC 역시 영업이익률이 2%대 수준이다. 한두 종류의 와인만 수입하는 소형 업체 중에는 문을 닫은 곳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2010년 이후 국내 와인 수입업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가격 투명화와 대형 유통기업의 시장 진출이다. 비비노 와인서처 등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판매 가격이 공개되면서 국내 수입사들도 가격을 낮춰 팔 수밖에 없었다. 마진 축소는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와인을 수입해 판매하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등 대형 유통기업의 영향도 있었다. 특히 이마트가 100% 자회사로 2009년 설립한 신세계엘앤비는 대량주문과 그룹의 유통망을 활용해 와인 가격 인하를 주도했다. 이들 대형 유통사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기존 수입사들은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와인 소비는 늘지 않고 고급 와인으로 갈아타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올 들어선 전체 수입량도 줄었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정기적으로 여는 대규모 할인행사 영향으로 중소·중견업체들이 판매하는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이 커지고 있다”며 “대형마트 비중이 높거나 가격 경쟁력이 약한 기존 와인 수입업체 가운데 어려움을 겪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와인가격 낮췄다” 평가도
설 땅이 좁아진 와인 수입업계는 한국주류수입협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소업체가 수입하던 대표 와인이 신세계로 넘어간 게 결정적인 계기다. 올 들어서만 빈티지코리아가 수입하던 투핸즈, 나라셀라가 들여와 판매하던 콜럼비아 크레스트 등이 한국 수출 채널을 신세계로 교체했다. 2013년 이후 중소·중견업체에서 신세계로 말을 갈아탄 주요 와인은 로스바스코스 이기갈 루이자도 등 7개에 달한다. 업계에선 “신세계가 와인업체에 접근해 거래 루트를 바꾼 게 상당수”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신세계는 “와이너리가 먼저 연락해 왔다”고 밝혔다.
협회 와인분과 관계자는 “회원사들이 조만간 신세계엘앤비 측에 협회 가입과 공정한 거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며 “기존 수입사 와인을 덤핑해서 판매하거나 기존 수입사와 거래하는 와이너리에 고의로 접근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유통사의 와인 수입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데다 품질 좋은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만큼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신세계의 진출 이후 1만원대 와인이 등장하는 등 대중화가 급물살을 탔다.
한 소형 수입업체 대표는 “수입사가 몇 곳으로 집중되면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와인을 경험할 수 없게 될까 우려된다”며 “와인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대형 유통사와 기존 수입사들이 소통하면서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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