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사모펀드의 기업 구조혁신] 2. 대한전선의 부활 이끈 IMM PE

입력 2017-11-29 14:08  

채권단 축소경영 딛고 기술로 시장 지배력 회복


이 기사는 11월29일(14:0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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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6일 경기도 안양의 한 호텔 부페 식당. 접시에 음식을 담는 대한전선 임직원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날은 채권단 자율협약 졸업식에 이어 회사의 새 최대주주 IMM프라이빗에쿼티(PE)의 ‘타운홀 미팅’이 열리는 날이었다. 2009년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의 재무구조개선 약정 이후 6년여간 고달픈 시기를 겪어온 터. 대한전선 임직원들은 새 주인인 IMM PE가 또 한번의 고강도 구조조정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생각하고 불안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운홀 미팅 무대에 선 송인준 IMM PE 대표의 발언은 예상을 빗나갔다. 송 대표는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스톡옵션 부여와 △별도의 격려금 지급을 약속했다.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로 5~6년간 ‘축소경영’을 이어온 대한전선이 새로운 도약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재앙이 된 투자 성공

“2003년 진로 채권 투자로 큰 돈을 벌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텐데….”

대한전선에 오래 몸담은 임직원들이 2008년 이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1955년 설립된 대한전선은 국내 최초의 종합 전선 제조업체다.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2008년까지 54년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알짜기업이었다. 문제는 전선 사업의 성장 정체와 수익성 악화에 대한 경영진의 대응에서 시작됐다. 경쟁사인 LS전선이 원가 절감과 기술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한 반면 대한전선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2003년 우연한 기회에 3500억원을 투자한 진로 채권이 2년만에 100% 넘는 수익률을 가져다줬다. 2004년 당기순이익 450억원의 7배가 넘는 돈을 금융 투자로 벌어들인 셈이다.

고무된 대한전선 경영진은 전선 사업과 관련이 없는 사업이나 부동산 자산에 문어발식 투자를 이어갔다. 남부터미널, 무주리조트, 트라이브랜즈(옛 쌍방울), 필리핀 세부리조트, 캐나다 힐튼 호텔 등 업종과 국적을 불문했다. ‘제조업체가 아닌 투자회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정점을 찍은 건 2007년 세계 최대 전선업체인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지분 인수였다. 대한전선은 홍콩법인과 역외에 설립한 펀드를 통해 총 1조원을 들여 프리즈미안 지분 26.4%를 사들였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세계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투자한 자산들의 가치가 급락했다. 주당 약 22유로에 사들인 프리즈미안의 주식 가치도 한 때 6.5유로까지 폭락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채는 약 1조9000억원(2007년말 현재)까지 불어나있는 상황이었다.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대한전선은 2009년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재무개선약정을 체결한다. 6년여간 이어진 긴 ‘축소경영’의 시작이었다.

◆IMM과 인연을 맺다

IMM PE와의 첫 만남은 그즈음이었다. 송인준 대표는 본업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한전선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있는만큼 반드시 투자기회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김영호 수석 부사장을 대한전선에 보냈다.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 근무 시절부터 대한전선을 잘 아는 박찬우 전무와 삼일회계법인 출신 윤주환 이사가 실무를 맡기로 했다. 채권단과의 협의 하에 비핵심자산 매각에 나선 대한전선은 IMM PE에 무주리조트와 알루미늄 압연업체 노벨리스코리아 지분을 인수해달라고 요청했다. IMM PE는 이중 노벨리스코리아 지분 26.7%의 유동화를 도우며 대한전선과 첫 인연을 맺었다.

IMM PE는 이후 대한전선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돕기 위한 다양한 제안을 했다. 2010년에는 대한전선을 굿컴퍼니와 배드컴퍼니로 나눈 후 전선사업을 인수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창업주 3세인 설윤석 사장은 전선 사업을 포기하지 못했다. 이후 회사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됐다. 자산은 줄어드는데 차입금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결국 2012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돌입했다. 문어발식 투자를 이끌었던 전문경영인 임종욱 전 부회장은 사퇴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설 사장도 경영권을 포기해야 했다.

◆채권단 관리 하에 돈 묶인 대한전선

채권단 관리 하에서 회사의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 채권은행들의 최우선 순위는 회사의 체질 개선이나 장기 경쟁력 제고가 아닌 원리금 상환이었다. 본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뉴머니(신규 자금)’가 투입되어야 하지만 이미 차입금이 2조원 가까이 들어가 있는 회사에 추가로 대출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보니 채권단 회의는 전략이나 영업회의보다는 늘 자금회의로 집중됐다. 영업에서 나오는 현금흐름만으로 일단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게 최대 관심사였다.

이는 역마진 상품 판매로 이어졌다. 수주 산업은 특성상 수주와 실제 돈이 들어오는 시기에 불일치(미스매치)가 발생한다. 이 시기에 회사를 굴릴 운전자본을 은행에서 빌려주지 않자 대한전선은 예컨대 5000원에 구입한 구리로 구리나선(copper load)을 가공해 4900원에 팔았다. 당장 돈이 필요해서다. 그러다보니 부가가치가 높은 초고압케이블 사업을 제외한 소재 사업과, 산업용 전선 사업에서는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 지속됐다.

견디다못한 하나은행 등 채권단은 2013년말 7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실시했다. 대한전선의 차입금은 1조3000억원으로 줄었다. 채권단은 1년후인 2014년말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보유지분 매각에 나섰다. 한앤컴퍼니가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했지만 제시한 가격이 채권단의 최저 충족 요건에 맞지 않아 무산됐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IMM PE

상황을 지켜보던 IMM PE는 한두달을 기다린 후 하나은행 등 채권단에 신주 형태의 새로운 거래를 제안했다. 뉴머니가 투입되지 않고는 회사를 살릴 수 없다는 논리였다. 기존 주식에 대해 5대1 감자를 실시하고, IMM PE가 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대한전선 지분 70%를 확보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채무는 2020년까지 유예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채권단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다. 우리은행 등 일부 채권은행들은 “이 정도 가치에 거래를 할 거면 채권단이 계속 관리하는 게 맞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채권단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미 자본잠식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 과거 분식회계로 주식 거래가 정지된 상태여서 상장이 아예 폐지될 위험도 높았다.

결국 IMM PE는 채권단을 설득한 끝에 2015년 9월 3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투입하고 대한전선 지분 70%를 확보한다. 유상증자를 통해 들어온 3000억원은 대한전선에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다. IMM PE는 3000억원 중 1000억원은 채권단 차입금 상환, 1000억원은 우발채무 해결, 나머지 1000억원은 연구개발(R&D) 등 그동안 하지 못했던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기로 했다. 유동성을 해결하기 위한 저가 매출은 곧바로 중단했다. 인수 전 2170%에 달했던 부채비율이 곧바로 249%로 떨어졌다.

곧바로 우발채무를 줄이기 위한 비주력사업 정리에 나섰다. 인수 3개월 후인 2015년 12월 서울 남부터미널 부지와 영출국제무역, 베리앤앤씨를 매각했고 이듬해 4월에는 독산동 우시장 부지를 팔았다. 올해 7월에는 대경기계기술 지분도 매각했다.

대한전선의 재무건전성이 개선되자 그동안 발주를 꺼렸던 국내외 고객사들이 발주를 재개하기 시작했다. 대한전선의 초고압케이블 수주량은 2015년 2425억원에서 6008억원으로 급등했다.

“우리는 대한전선의 기술력과 50년 이상 쌓아온 업력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할 일은 우발채무를 관리하면서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회사가 어렵다보니 직원들도 많이 지쳐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흥이 나게 할 수 있을가를 고민했어요. 스톡옵션과 격려금을 지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박찬우 전무)

◆“불량 죽음, 품질 생존”

최고경영자(CEO)는 6개월전 채권단이 한앤컴퍼니와의 협상이 결렬된 후 ‘회사를 일단 정상화시키자’며 선임한 최진용 사장을 유임시켰다. 최 사장은 전선업계 최고 전문가였다. 1977년 대한전선에 입사해 15년간 일하다 일진전기로 옮겨 최장수 CEO를 지낸 인물이었다. 박 전무는 “최 사장은 일진전기에서 공장장도 역임했기 때문에 생산현장과 기술, 고객, 시장을 모두 꿰뚫고 있었다”며 “대한전선 CEO로 더 이상 좋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면접에서 최 사장이 제시한 경영 비전도 IMM PE의 생각과 일치했다.

최 사장이 가장 먼저 한 일도 직원들의 ‘기(氣)’를 살리는 일이었다. 주인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임직원과 CEO와의 직접 대화를 정례화했다. 임직원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가족 초청 행사도 벌였다. 조직에 활기가 돌자 본격적인 혁신에 돌입했다. ‘불량과의 전쟁’을 선포한 게 시작이었다. 생산현장에서 입는 유니폼에 ‘불량 죽음, 품질 생존’이라는 문구를 새겨넣었다. 불량을 줄이기 위한 치열한 토론도 벌였다. 그러자 불량률이 30% 줄어들었다.

“전선회사는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제품 판매가 이뤄집니다. 품질을 인정받아 고객사에 벤더(협력사)로 등록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가격 경쟁이죠. 원가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원가 경쟁력은 기술력과 품질력, 생산력 등 세가지가 좌우합니다. 불량을 줄이고 전선 제조의 생산성 지표인 선속(line speed)을 높이기 위해 공장에서 워크샵도 하고 치열한 토론도 벌이고 외부 전문가도 영입했습니다.” (최진용 사장)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높여라

회사의 기초 체력을 바로 세운 최 사장과 IMM PE는 신제품 개발과 시장지배력 확대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진 지난 수년간 전혀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IMM PE는 유상증자 대금 3000억원 중 1000억원을 R&D와 설비투자에 사용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R&D는 해저케이블이었다. 상대적으로 난도가 낮은 22.9 ㎸ 이하의 배전용 해저케이블부터 개발해 생산설비를 갖추고 납품을 시작했다. 66㎸ 이상의 초고압 송전용 해저케이블은 일단 기술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대규모 설비투자는 다음 인수자에게 남겨놓는다는 전략이다.

과거 중동에만 한정되어 있던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IMM PE와 최 사장이 세운 목표였다. 중동은 유가가 하락하면 발주가 줄어드는 등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으로 수출선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박 전무는 “특히 미국과 유럽의 경우 앞으로 약 10여년간 전선 교체 수요가 크고 동남아시아는 성장하는 시장이어서 이 시장들을 공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한전선은 일단 베트남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해외 생산 법인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두 법인 모두 현지 회사들과 합작형태로 되어 있어서 빠른 의사 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베트남 법인인 대한비나의 경우 현지 업체의 지분을 모두 사들여 100% 자회사로 만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엠텍(M-TEC)의 경우 흑인 우대정책 때문에 지분은 49%만 유지하되 완전한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후 두 회사 모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올해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생산법인을 설립했다.

영업을 담당하는 해외지사도 확대했다. 올해 4월에는 유럽 시장 확대을 위해 런던 지사를 설치한 데 이어 7월에는 미국 동부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뉴저지 지사를 신설했다. 최 사장은 “과거에는 세계 1~2위 전선업체인 이탈리아 프리즈미안과 프랑스 넥상스가 있어 유럽 시장은 거의 포기했었는데 이들과 제대로 경쟁하기 위해 유럽 지사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향후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으로 지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신껏 일하게 하는 지배구조

“채권단 경영은 곧 축소경영을 의미했어요. 개발이나 설비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사람도 새로 뽑을 수 없었죠. 사모펀드는 정 반대에요. 이들의 목적은 3~5년 시간을 두고 회사를 성장시켜서 비싼 가격에 되파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투자가 일어나고 조직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최 사장은 채권단 하에서의 경영과 IMM PE 체제 하에서의 경영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특히 이사회와 경영진을 분리한 ‘집행임원제도’로 경영진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대표이사가 아닌 대표집행임원이다. 그는 “송인준 사장, 김영호 부사장 등 IMM PE 인력 위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는 큰 규모의 투자 등만 결정하고 일상적인 회사 운영은 대표집행임원과 경영진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라며 “오너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소신있게 일할 수 있어 스스로 주인의식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효율적인 지배구조 하에서 내려지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실적으로 연결됐다. 지난해 매출은 인수 당시인 2015년의 1조6887억원에 비해 오히려 19% 가량 줄어든 1조374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281억원에서 487억원으로 73% 늘었다. 마진이 낮은 제품은 과감히 정리하고 초고압 케이블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한 영향이다. 인수 당시 주당 500원이던 IMM PE의 지분 가치는 주당 1200원대로 늘어났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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