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은가

입력 2017-11-29 18:10  

성공한 이들에게도 사이코패스 성향 있지만
행복은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필수적이다
사랑하고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 키워야

김진세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사이코패스(psychopath). 잔혹한 범죄 뉴스, 섬뜩한 공포영화, 그리고 막장 드라마에 유행처럼 등장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게다가 ‘반(反)사회적 인격장애’는 무엇이고 소시오패스(sociopath)는 또 무슨 뜻일까.

어원 그대로 풀자면 사이코패스는 정신(psycho)이 병든(path) 사람, 즉 ‘정신병질자(精神病質者)’다. 하지만 정신에 병이 있다고 모두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적어도 사이코패스라고 불릴 정도면 일단 매력적이어야 한다. 말도 잘하고 호감이 있어야 한다.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일 필요는 없지만 무조건 믿음직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괴롭힐 수 있다. 무서운 것은 그들에게는 죄책감이란 것이 없다는 점이다. 사이코패스에게는 양심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타인이란 인간관계의 상대가 아니라 이용해먹을 대상일 뿐이다.

사이코패스가 역사적으로 더 오래,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용된 용어라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정신과 질환의 진단명이다. 남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며 반복적인 범법행위, 자신의 이득을 위한 거짓말, 충동성과 공격성 등을 보인다. 또 무모하게 안전을 무시하고 시종일관 무책임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둘은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비해 범죄적 성향이 많다. 훨씬 센 놈이다.

소시오패스는 비슷하기는 하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사이코패스와 다르다. 첫째, 사이코패스는 타고난 기질과 연관이 많다. 유전이나 뇌의 이상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소시오패스는 자란 환경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둘째,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이코패스에 비해 소시오패스는 양심이 조금은 남아 있다. 그럴듯하게 지어낸 얘기로 타인을 곤경에 빠지게 한다면 소시오패스는 잘못된 것을 알고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그렇다고 나쁜 짓을 멈추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 공감과 동정심이 없는 사이코패스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고려가 절대 없다.

자신이 죽일 가게 여주인에게 예의 바르게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쓸 만한 망치’를 달라던 영화 ‘추적자’의 주인공처럼 사이코패스는 공포의 대상이다. 전문가들조차 이런 사이코패스들은 도저히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기에는 어려운, 결국엔 감방에서 생을 마칠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감방이 아닌 사회 최상층에도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호주 본드대의 심리학자 나단 브룩스가 미국 최고경영자(CEO) 1000여 명을 조사했더니 21%가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반인 유병률이 1%고 범죄자 중 사이코패스가 20%라는 결과를 보면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리먼브러더스의 회장 리처드 펄드는 물론이고 애플 신화의 주인공 스티브 잡스조차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있었다고 한다.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를 쓴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자 케빈 더튼은 성공한 사이코패스의 특징으로 ‘무자비함’ ‘외적 매력’ ‘집중력’ ‘강인한 멘탈’ ‘배짱’ ‘현실감각’ ‘실행력’을 꼽았다. 이 특징들이란 것은 읽기만 하면 부자가 된다는 자기계발서라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소위 성공한 인생의 덕목들이 아닌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군가를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남을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사이코패스처럼 되려고 노력해야 할까. 말도 안 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 행복은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필수적이다. 사이코패스가 억만금을 줘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깊이 있는 인간관계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진정한 인간관계 형성의 능력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로서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절대 혼자 오지 않는다.

김진세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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