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파울 폴만 유니레버 CEO

입력 2017-11-30 16:48  

"기업 경영, 사회문제 해결의 일부가 돼야 사회도 지속가능한 발전 이룬다"


[ 추가영 기자 ] “빈곤 종식, 건강과 웰빙, 깨끗한 물과 위생….”

2015년 유엔 총회에서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목표 17가지를 채택했다. 이 목표의 초안을 작성한 전문가 중 기업인은 단 한 명뿐이었다. 파울 폴만 유니레버 최고경영자(CEO·61)가 그 주인공이다.

2009년부터 유니레버 CEO를 맡은 그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 이상으로 비정부기구(NGO)나 세계경제포럼(WEF) 등에서 지속가능 경영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폴만 CEO는 “내게는 둘 다 같은 업무”라며 “우리가 사업을 운영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정도다. 빈곤 종식이나 물 부족 및 위생 개선 등이 유니레버의 세탁 세제 제조, 차 재배 등에 이르기까지 기업 운영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폴만 CEO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망하고 있는 사회에서 기업만 성공할 수는 없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경영도 사회 문제 해결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2010년 폴만 CEO가 공장폐수를 줄이고, 여성인력을 훈련하는 등의 50개 목표를 포함한 ‘지속가능한 생활 계획’을 도입한 뒤 유니레버의 기업 평판이 더 좋아지고 있다. 비누 등 소비재를 주로 판매하는 유니레버는 올해 포천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50’ 중 38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 비해 세 단계 순위가 올랐다.

‘책임경영’ 위해 CSR부서 해체

세계 지속가능발전기업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폴만 CEO가 2009년 경쟁사인 네슬레에서 유니레버로 옮기면서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전담 부서를 해체한 것이다. 그는 환경이나 빈곤 문제를 CSR로 분리해 사업과 별개로 운영하는 것에 반대한다. 사회 문제 해결은 일개 부서가 아니라 유니레버 직원 16만9000명이 모두 사업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폴만 CEO의 경영 철학은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유니레버는 신흥국 소비자 교육을 통해 제품 사용을 권유하는 ‘마케팅 전술’을 주로 쓴다. ‘세계 손씻기 날’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인도 등지에서 손씻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해당 지역의 위생을 개선할 뿐 아니라 유니레버 대표 브랜드인 라이프부이나 선라이트 비누 판매도 늘렸다.

유니레버의 인도 법인 힌두스탄 유니레버가 2008년 출시한 정수 필터 퓨어잇(Pureit)도 비슷한 사례다. 유니레버는 NGO와 손잡고 오염된 물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고, 물을 끓여 마시는 것보다 정수 필터를 사용하는 것이 돈과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라고 홍보했다. 퓨어잇은 인도를 넘어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유니레버는 신흥국에선 선진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 수요 자체를 확대하는 전략을 폈다. 필리핀에서 스틱형 데오도란트의 가격을 낮춰서 내놓은 데 이어 더 싼 가격의 크림 타입 데오도란트를 개발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따르면 유니레버의 데오도란트 브랜드 ‘렉소나’가 이 같은 가격 정책을 펼친 결과로 전 세계 데오도란트 사용 인구는 60%까지 늘어났다.

유니레버의 매출은 폴만 CEO가 취임한 2009년 398억2300만유로에서 지난해 527억1300만유로(약 67조원)로 늘어났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신흥국 매출 비중이 2007년 31%에서 지난해 43%까지 높아졌다.

130여년 된 기업의 ‘장기 비전’

폴만은 유니레버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인사로서 CEO 자리에 올라 화제가 됐다. 1956년 네덜란드 동부 도시 엔스헤데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 회사인 유니레버에 CEO로 발탁되기 전 경쟁사인 프록터앤드갬블(P&G), 네슬레 등 소비재 기업에서 30년간 경력을 쌓았다. 네덜란드 그로니겐대를 졸업한 뒤 미국 신시내티대에서 경영학과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MBA를 취득한 1979년부터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본사를 둔 P&G에서 27년간 근무했다. 이후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스위스 식품기업 네슬레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폴만 CEO 선임 당시 세계 3대 소비재기업을 두루 섭렵한 그의 경력을 유니레버에서 높이 샀다고 평가했다.

폴만의 지속가능경영·책임경영 철학은 유니레버의 첫 사업모델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유니레버는 빅토리아 여왕시대인 1880년대 영국 리버풀 인근 포트 선라이트란 마을에서 첫 브랜드 비누인 선라이트를 선보였다. 창업자인 윌리엄·제임스 레버 형제는 당시 빈곤과 불결한 환경 때문에 만연했던 전염병과 소아 사망을 근절하기 위해 비누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소명의식은 13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폴만 CEO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평가다. 폴만은 “창업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과 인도에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밀레니얼 세대 겨냥

그는 이 같은 사명감이 회사의 수익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만 CEO는 “수억 명의 사람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때 식료품을 팔 수 있는 기회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며 “빈곤을 퇴치하는 데 성공하면 결국 유니레버 주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존경하는 리더로 마하트마 간디와 넬슨 만델라를 꼽은 것은 놀랍지 않다. 폴만은 “리더십이란 자기 자신보다 타인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만 CEO는 유니레버의 이 같은 철학이 새로운 인재를 모으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올초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1년에 180만 건의 입사지원서가 접수되고 있다”며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들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적극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인기를 끌 만한 브랜드 인수에도 적극적이다. 유니레버는 지난 9월 한국 화장품 브랜드 카버코리아를 22억7000만유로(약 2조9000억원)에 인수했고, 이달엔 스타벅스의 차 브랜드 타조를 3억8400만달러(약 4100억원)에 샀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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