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서 일하면서 가난한 농민들 안타까워
두 배 비싸게 수매 계약
재래식 된장 팔아 '대박'
[ 고은이 기자 ] 영농조합법인 ‘동트는농가’는 강원 정선군 42번 국도변에 있다. 고갯길을 굽이굽이 넘다 보면 정선읍에 낮은 건물 몇 채가 모여있는 곳이 나온다. 이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야 농가의 진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뒤쪽으로 산이 감싼 넓은 마당에 1200여 개의 장독이 그림처럼 늘어서 있다. 이 동네 쥐눈이콩(약콩)으로 담근 재래식 된장과 간장, 고추장이 그 안에 있다.
1985년 정선 농협에 근무하던 청년은 우연히 한 노인으로부터 쥐눈이콩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은 콩 두 되 반을 구해 지역 농민들에게 재배를 권했다. 고랭지 농가들과 함께 시작한 조합은 32년 뒤 연 4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됐다. 그 청년이 최동완 동트는농가 대표다. 농가 안뜰에서 그를 만났다.
▶장독이 몇 개나 됩니까.
“한 1200개 됩니다. 많을 때는 항아리를 1700개까지 했는데 지금은 깨진 것도 있어서 그 정도 될 거예요. 여기가 산지라 서늘하고 물이 좋으니까 장이 아주 맛있게 발효됩니다. 우리 장은 약콩(쥐눈이콩)과 백태(노란 콩)를 섞어서 만들어요. 정선 고랭지 지역 농가들 콩으로 하는 겁니다.”
동트는농가는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장류와 이 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콩탕 청국장 등 간편식을 판다. 조합원들이 직접 농사지은 콩과 고추를 재료로 옛날 방식으로 장을 담근다. 최 대표는 농가가 생산한 콩을 모아 가공, 상품화하는 과정을 총괄한다.
▶몇몇 농가들이 함께 하나요.
“조합원 농가가 102곳입니다. 거의 30년 전부터 쭉 같이하던 농가들이지요. 100% 계약재배 시스템이에요.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장을 담그고, 이 장으로 찌개 상품을 만들어서 팔고. 그렇게 하니까 우리 농가들은 고생한 만큼 콩값을 받을 수 있지요.”
정선 토박이인 최 대표는 젊은 시절 농민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농사 작업이 힘든 산악 지대에서 농민들은 고되게 일했지만 벌이는 그에 한참 못 미쳤다. 1년 소득이 300만원도 안 되는 농가도 많았다. 젊은 최 대표는 그게 답답했다. 그러던 중 쥐눈이콩을 알게 됐다.
▶쥐눈이콩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1985년이었던가. 우연히 만난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이게 너무 좋은 콩인데 자기는 힘들어서 농사를 더 못 짓겠다는 거예요. 옛 문헌을 찾아보니 쥐눈이콩에 효능이 참 많아요. 그 노인으로부터 콩 두 되 반을 얻어온 게 시작이었습니다.”
정선 농협에서 수매 업무를 했던 최 대표는 그 콩을 몇몇 농민에게 주며 농사를 권했다. 3년이 지나자 콩 두 되 반이 1000가마로 불어났다. 쥐눈이콩의 효능을 잘 알려서 팔면 뭔가 일이 되겠다 싶었다.
▶뭘 하고 싶었던 겁니까.
“그때 여기 농촌은 정말 다 못 살았어요. 나는 여기에서 자라서 농협에서 일했으니까 그걸 잘알고, 왜 농민들은 다 이렇게 못 살아야 하나 오래 생각했지요. 쥐눈이콩은 어디서도 못 구하는 콩이니까 이걸로 제대로 값을 받아보자고 했어요.”
최 대표는 쥐눈이콩을 시중 콩값의 두 배에 사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재배농가를 모집했다. 계약재배 방식으로 꾸준히 콩을 사들이고 여기에 부가가치를 더해 파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간장을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농가로부터 콩을 비싸게 사주려면 그냥 콩으로 팔면 안 됐어요. 그러다 보니 가공을 해야 했고, 콩으로 할 수 있는 가공업을 알아보니 두유랑 장류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두유를 하려면 시설비만 25억원이 든답디다. 장독값만 들여서 간장부터 시작했어요. 그다음에 차근차근 된장 고추장 청국장을 담갔죠. 콩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요.”
처음부터 장맛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주변에 장이 맛있다고 소문난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노하우를 배웠다. 배합 과정을 찾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그렇게 만든 장으로 식당을 열었다. 된장찌개와 청국장이 주력이었다. 이 식당을 한 해 5만 명이 찾았다. 식사를 하고 된장을 더 사가거나 택배 주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택배 고객만 4000명에 이른다.
▶동트는농가 농민들은 잘살게 됐나요.
“계약 재배를 하면 그대로 안정적인 판로가 생기는 거니까요. 또 우리는 농한기에도 쉬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잖아요. 장을 직접 담그니까요. 올해는 이 동네 사람 60명이 와서 장을 함께 만들었어요. 농사 외에 부가 소득이 생긴 거지요. 이 동네 사람들은 농부라고 못 살지 않아요.”
정선=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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