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 건수 3년새 28% 증가
숭의초·부산여중생 사건 후 급증
화해권유 교사는 은폐 몰리기 십상
학폭위 서류만 10종… 행정 부담
합의 안돼 학생부 '전과' 기록 남아
사소한 사안 '교육적 해결' 목소리
[ 김봉구 기자 ] “야, ×신아.” “왜, 이 ×신아.” 학교 복도를 지나가다 농으로 주고받은 사소한 다툼은 예상치 못하게 커졌다. 경기도 한 고교에서 일어난 사례다. 당시만 해도 웃고 넘겼던 A군은 이후 사이가 틀어지자 상대 B군을 상대로 ‘언어폭력’에 대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 달라며 신고했다.
담임교사는 “별일 아니니 서로 사과하고 없던 일로 하면 안 되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학폭 은폐·축소 시도로 몰릴 뻔했다. 어쩔 수 없이 학폭위를 연 이 교사는 “남학생끼리 늘 하는 말인데 싸잡아 문제 삼으면 학폭이 된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학폭위를 열어야 해 문제 해결은커녕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꿀밤 한 대, 욕설 한마디에도 “법대로”
학교의 ‘학폭위 피로증’이 심각한 수준에 접어들었다.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폭위 심의 건수는 2013학년도 1만7749건에서 해마다 늘어 2016학년도 2만2673건으로 3년 새 27.7% 증가했다. 현장 체감은 더 심각하다. 올해 굵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진 탓이다. 대기업 회장 손자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숭의초 학폭 사건,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기점으로 학폭위 신고는 걷잡을 수 없이 폭증했다.
학생 간 꿀밤 한 대, 욕설 한마디까지 모두 학폭으로 간주해 ‘법대로’ 처리하자는 추세다. 실제로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쟤 재수 없어”라고 ‘뒷담화’했다가 신고로 학폭위에 회부됐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그대로 ‘증거’가 됐다.
일반적 법 적용보다 훨씬 과잉 규정하는 학폭법이 문제를 키웠다. 예컨대 사회에서는 경미한 쌍방 과실은 당사자 간에 합의하거나 경찰이 합의를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폭법에서는 불가능하다. 영남 소재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끼리 순간 욱해서 다퉜다가 화해했고 학폭위 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교사가 상황을 인지하면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학폭 전담변호사까지 등장
일단 학폭위가 열리면 1호(서면사과)부터 9호(퇴학)까지의 조치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의무 기재하도록 돼 있다. 서울 지역 고교 진학부장은 “한마디로 ‘전과’ 기록이다. 실정법을 어겨도 기소유예되면 기록은 남지 않는 걸 감안하면 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험생 인성을 평가하는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준비 학생에게는 치명타다. 학폭 전문 법무법인 관계자는 “학생부 기재는 예민한 사안이라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꽤 많다”고 전했다.
학교의 행정 부담도 크다. 신고가 들어오면 진술서부터 조사·보고·조치 절차까지 작성해야 하는 서류만 평균 10종이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심한 경우엔 30~40가지 서류를 준비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등지에서는 변호사까지 구해 학폭위를 대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경미한 사안은 학폭위를 열지 않고 학교 내에서 ‘교육적 해결’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예컨대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은 학폭위가 아니라 소년법정에서 다룰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학폭위가 결코 능사도 만능도 아니며, 지나치게 광범위한 학폭법 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교총은 ‘학교장 종결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조건 학폭위로 몰고 가 징계와 처벌로 결론내지 말고 지도·훈계 등 적절한 생활지도를 선행하자는 주장이다.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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