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베네치아' 스톡홀름
노벨상의 도시
쿵스홀멘의 랜드마크 시청사
화려한 '황금의 방'에선 매년 노벨상 수상자 만찬 열려
스웨덴의 역사, 감라스탄
13세기부터 도시 발달한 섬, 바로크·로코코·고딕 건물 빼곡
57년간 공사한 왕궁도 볼거리
茶 한잔의 여유, 피카
스웨덴어로 '커피 브레이크'
유르고르덴 섬의 장미 정원서 느긋하게 시간 보내며 '힐링'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14개의 섬을 57개 다리로 엮어 놓은 도시다. 배를 타고 운하를 누비다 보면 붉은 벽돌 건물이 웅장한 시청사, 화사하고 우아한 왕궁이 자태를 뽐낸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와 페리도 운치를 더한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다리 위를 걸어서 이동하는 일도 이색적이다. 다리를 스치는 바람은 상쾌하고, 어깨너머로 짙푸른 바다가 일렁인다. 그렇게 스톡홀름의 낭만은 수로를 타고 흐른다.
노벨상의 영광이 깃든 섬, 쿵스홀멘
“발트해와 멜라렌 호수 사이에 있는 스톡홀름은 수많은 섬을 품고 있어요. 섬과 섬을 잇는 운하가 아름다워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답니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 위,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벨기에의 베네치아, 포르투갈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도시는 다녀봤지만, 베네치아에 견줄 만한 곳은 보지 못했기에.
스톡홀름은 규모가 달랐다. 물길로 둘러싸인 섬에 파스텔 빛 건물이 솟아 있는가 하면, 드넓은 수면 옆으로 숲이 우거진 섬, 알록달록한 별장이 있는 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페리를 타고 나아갈수록 드넓은 수로와 조각조각 흩어진 다도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베네치아라는 수식어가 부족하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실제로 스톡홀름 남부 해안에는 2만 개의 섬과 암초가 군도를 이루고 있다.
이 도시를 이루는 섬을 거닐고 싶어졌다. 시청사가 있는 쿵스홀멘부터 물 흐르듯 섬을 누비기로 했다. 쿵스홀멘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왕궁과 구시가가 있는 감라스탄, 감라스탄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면 미술관 섬 ?스홀멘, ?스홀멘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면 박물관 섬 유르고르덴이 차례로 연결된다.
스톡홀름 시청은 제방 위에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로 가까이서 보니 더욱 웅장했다. 꽃 모양 창문과 양파 모양 지붕 등 곳곳에 장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보였다. 웬만한 교회 첨탑보다 높은 106m 전망대의 자태도 고고했다. 무엇보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 만찬을 여는 ‘황금의 방’이 압도적이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 발명가 노벨이 남긴 유산으로 시작된 상으로, 매년 12월10일 노벨이 세상을 떠난 날 시상식을 연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노벨연구소 설립과 노벨상에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화학, 물리학, 평화, 문학, 의학 5개 부문에 걸쳐 인류에 기여한 수상자에게 금메달과 상장, 그리고 800만크로나(한화 10억3720만원)의 상금을 안겨준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섬, 감라스탄
감라스탄은 스톡홀름 정중앙의 섬이자 가장 유서 깊은 섬이다. 13세기 여기서부터 도시가 발달해 지금도 바로크부터 로코코, 고딕 등 다양한 시대에 세운 고풍스러운 건물이 섬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스토르로트예트 광장은 노벨박물관, 증권거래소 등 고아한 건물과 노천카페, 레스토랑이 빙 두르고 있어 활기가 넘친다. 500여 년 전 스톡홀름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평화롭다.
1520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는 이 광장에서 스웨덴 시민과 귀족 80명을 처형했다. 노르웨이, 덴마크와 맺은 칼마르 동맹에 반기를 든 스웨덴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에 구스타프 바사는 반란을 일으켰다. 수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1523년 6월6일 스웨덴 국왕 자리에 올랐다. 그날부터 6월6일은 스웨덴의 국경일로 지정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스웨덴의 국력이 강해질수록 감라스탄도 발전을 거듭했다. 감라스탄에 남아 있는 왕궁이 그 증거다. 57년간의 긴 공사 끝에 지은 궁전으로 지금은 왕가의 집무실로 쓰인다. 궁에는 총 1430개의 방이 있는데, 역대 왕가의 왕관과 보석을 전시한 보물의 방, 로코코 양식이 화려한 예배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왕궁 앞에서 거행되는 근위병 교대식도 지나치기 아쉬운 볼거리다.
스토르로트예트 광장 옆으로는 길을 헤매도 좋을 만큼 예쁜 골목이 실핏줄처럼 이어진다. 안 들어가곤 못 배길 만큼 예쁜 잡화점, 옷가게, 그릇가게가 골목 안에서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았다. 골목을 누비다 섬 가장자리로 나오면 다시 항구와 바다가 눈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여기는 물의 도시 스톡홀름이니까.
초록의 박물관 섬, 유르고르덴
운하의 도시 스톡홀름에선 트램도 섬과 섬을 잇는 다리 위를 지난다. 하늘을 닮은 파란 트램을 타고 스톡홀름 동쪽에 있는 작은 섬 유르고르덴으로 향했다. 트램을 타고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 보니 금세 도착했다. 유르고르덴은 17세기 후반에 왕실 사냥터로 쓰이던 곳으로 지금도 숲과 야트막한 언덕이 어우러진 목가적인 풍경이 남아 있다. 다양한 장르의 박물관이 모여 있어 ‘박물관 섬’이라고 불린다.
섬 초입에서부터 스웨덴 최대 문화사 박물관, 노르디스카 무제트가 눈길을 끌었다. 덴마크 르네상스 양식 건물 안에는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의복 가구 등이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노르디스카 무제트 뒤편 돛대가 달린 거대한 전함의 ‘바사무제트’도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볐다. 마치 배를 땅 위에 옮겨놓은 것 같은 모양새로 17세기에 건조된 바사 호를 기념하는 박물관이다. 바사 호는 구스타프 1세가 ‘30년 전쟁’을 위해 만든 전함이다. 1628년 첫 항해에서 2㎞도 채 가지 못해 균형을 잃고 침몰하고 말았다. 무거운 포를 너무 많이 실은 탓이었다. 한마디로 왕의 허세가 부른 참사였다. 그로부터 300년 뒤 고고학자 안데르스 프란첸이 바사 호를 발견했는데, 선체는 놀랍게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스톡홀름 사람들은 돌아온 바사 호를 유르고르덴으로 옮겨 박물관으로 변신시켰다.
바사무제트 옆 해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둣가 창고 같은 ‘스피릿 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스웨덴 태생의 보드카, 앱솔루트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독한 보드카는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웬만한 현대미술관 뺨칠 정도로 유명 작가들이 앱솔루트와 컬래버레이션한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향 체험관’에선 플레이버드 보드카의 다양한 향을 맡아볼 수 있고, 2층에선 앱솔루트의 역사와 제조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감자, 옥수수 등의 곡류를 증류해 만드는 보드카의 본산지는 러시아지만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도 국민 술로 통한다. 스웨덴에선 15세기께부터 불타는 와인이란 뜻의 ‘브렌빈’이란 이름으로 보드카를 만들어왔다. 1879년에는 라스 올슨 스미스가 보드카 원액을 여러 번 증류해 불순물을 없애는 연속식 증류법으로 ‘앱솔루트 렌트 브렌빈’을 선보였다. 이 보드카를 앱솔루트(Absolut)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수출하면서 스웨덴산 보드카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됐다.
스피릿 박물관 옆으로는 스웨덴의 국민 밴드 아바를 기념하는 아바 박물관과 놀이공원 그뢰나 룬트 티볼리가 이어진다. 아바 박물관에는 아바 팬이라면 동경의 눈으로 바라볼 아바 멤버들의 의상과 음반 등 전시품을 볼 수 있다.
유르고르덴 섬 장미 정원에서 피카를
‘이제, 우리 로젠달 트레스고르드에 피카 하러 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스톡홀름 생활 4년 만에 커피 한 잔보다 피카가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피카(Fika)는 스웨덴어로 ‘커피 브레이크’를 말한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차 한 잔의 여유’를 뜻한다.
‘장미 정원’이란 뜻의 ‘로젠달 트레스고르드’는 유르고르덴 섬 안 깊숙한 곳에 있다. 19세기에는 요세피나 여왕의 정원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전원 카페 겸 레스토랑이 됐다. 트램에서 내려 수목이 우거진 오솔길을 한참 걷자 너른 텃밭과 정원이 나타났다. 어디가 입구인지 두리번거리다 풀숲 사이로 들어서자 사과 농원과 온실이 있는 카페, 로젠달 트레스고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아래 피카를 즐기는 사람들, 주인 옆에서 단잠에 빠진 강아지. 저마다 편안한 자세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온실을 개조한 카페에선 빵과 수프뿐 아니라 커피, 맥주 등을 팔았다. 카페 옆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농작물로 만든다고 했다. 남은 음식도 비료로 사용해 선순환을 실천한다. 그래서일까. 그저 피카를 즐길 뿐인데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듯했다.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쇠데르말름
물가의 낭만을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는 남쪽 섬, 쇠데르말름의 현대사진 박물관 ‘포토그라피스카’다. 쇠데르말름은 과거 노동자 계층의 주거지였는데, 포토그라피스카를 비롯해 갤러리와 카페, 바, 특색 있는 상점이 속속 들어서며 힙스터가 모여드는 동네가 됐다.
포토그라피스카는 옛 세관을 개조한 붉은 벽돌 건물로 크루즈 선이 정박한 선착장 옆에 자리잡고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는 다큐멘터리 사진과 감각적인 인물 사진이 가득하다. 0층부터 1층까지 전시 관람 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보니, 2층에 전망 좋은 카페 겸 레스토랑이 짠하고 나타났다. 창문 프레임에 담긴 유르고르덴과 바다의 풍경도 영혼을 담아 찍은 사진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근사했다.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풍경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 여기서 피카 할까?’ 이번엔 내가 일행에게 제안했다. 어느새 스웨덴식 일상의 여유가 내 마음에도 스며든 것 같았다.
여행정보
서울에서 스톡홀름까지 직항은 없다. 핀에어를 이용해 핀란드 헬싱키를 거치면 편리하다. 헬싱키에 스톱오버할 경우 두 도시를 여행하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헬싱키에서 대형 페리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실야 라인(Silja Line)을 타면 1박2일의 짧은 크루즈 여행도 즐길 수 있다. 실야 라인은 배 안에 객실뿐 아니라 여러 레스토랑과 면세점, 사우나도 갖추고 있는 초대형 유람선이다.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뷔페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스톡홀름의 명소는 쿵스홀멘, 감라스탄, 유르고르덴, ?스홀멘, 쇠데르말름 섬에 집중돼 있다. 감라스탄과 ?스홀멘은 걸어서 충분히 돌아볼 수 있으며, 섬 간의 이동은 트램이나 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언어는 스웨덴어, 화폐는 스웨덴 크로네를 쓴다. 1크로네는 129.55원. 전압은 220V다.
스톡홀름=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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