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주총과 섀도보팅] 섀도 보팅 연말 폐지되면 주총 의결정족수 비상

입력 2017-12-11 09:02  

[ 임현우 기자 ] 주주총회를 열려면 일단 주주들이 모여야 한다. 현행 상법에 따라 주총에서 안건을 의결하려면 최소 전체 주주의 25%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하지만 매번 모든 주주가 모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덩치가 큰 상장사일수록 오너 일가는 물론 기관투자가, 외국인, 소액주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식을 나눠갖고 있다.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주총이 무산되는 일을 막기 위해 1991년 도입된 제도가 섀도 보팅(shadow voting)이다. 이른바 ‘그림자 투표’라 불리는 이 제도는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예컨대 주주 100명 중 10명이 주총에 참석해 찬성과 반대가 7 대 3으로 나왔다면, 나머지 90명도 이 비율대로 표결한 것으로 본다.

소액주주 주총참여율 1.88%

섀도 보팅은 2013년 폐지가 결정됐으며 4년여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말 완전히 사라질 예정이다. 하지만 정족수 부족에 대비한 보완책 없이 덜컥 폐지되면 ‘주총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율은 1.88%(주식 수 기준)에 불과하다. ‘개미’들은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려는 단기 투자 목적이 많아 주총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국내 12월 결산법인 1831개 중 28.2%(516개)가 지난 3년간 섀도 보팅 제도를 활용해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했다. 상장사가 주총에서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재무제표 승인 등에 실패하면 관리종목에 지정된다. 또 1년 안에 사유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이 폐지된다.

김규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전무는 “상장사 주주들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이 유가증권시장은 7.3개월, 코스닥시장은 3.1개월에 불과하다”며 “대부분의 소액주주가 단기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주총장에 소액주주를 25%나 불러오라는 건 기업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신사업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 정관 변경 등도 주총을 거쳐야 하는데 이 또한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주주 권리 보장” vs “주총 대란 우려”

당초 정부가 섀도 보팅을 없애기로 했던 배경은 ‘주주권 침해’ 논란 때문이다. 주총에 불참한 주주의 찬반 의사를 임의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소액주주들이 대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하도록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총장에 가지 않아도 투표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 등을 적극 활용하면 정족수 확보엔 문제가 없다는 게 폐지론자들의 입장이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기업에서 감사 선임 등이 어려워질 가능성은 있지만 소액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 지배구조 개선 등의 순기능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무부가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섀도 보팅 실태 분석’ 연구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섀도 보팅을 통해 의결된 주총 안건 6268개 중 73.2%는 섀도 보팅이 없었다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의결정족수를 완화하는 내용으로 상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섀도 보팅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재계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주주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섀도 보팅 폐지로 인한 ‘주총 대란’을 막을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처럼 주총 의결정족수 없애자”

해외 주요 국가에 비해 가장 엄격한 축에 속하는 주총 의사정족수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미국, 독일,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등은 정족수 기준이 아예 없다. 주주 한두 명만 참석해도 주총을 열 수 있다. 또 한국에선 찬성이 반대·기권보다 많아야 안건이 통과되는 과반수 방식인 것과 달리 이들 선진국은 찬성이 반대보다 많기만 하면 되는 단순 다수결 방식이다. 일본은 의사정족수 요건이 ‘전체 주식의 50% 이상 참석’으로 한국보다 오히려 엄격하지만, 기업마다 정관을 바꿔 요건을 완화할 수 있게끔 자율성을 부여했다.

섀도 보팅 폐지로 주총 소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곧바로 관리종목 지정, 상장 폐지 등 치명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상장사 관련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NIE 포인트

기업의 주주가 갖는 권리와 책임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섀도 보팅 제도 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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