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정부와 회사가 앞장서서 '부업' 권하는 사회

입력 2017-12-12 07:45   수정 2017-12-12 14:01

부업과 겸업이란 단어는 오랫동안 일본 사회에서 ‘금기어’였습니다.

종신 고용과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되는 가운데 본업과 병행해 다른 일을 하기 힘들고, 부업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가장이 한 회사에 뼈를 묻고, 가정을 부양한다는 ‘쇼와 모델’은 일본 사회상의 표준모델이었습니다.

그랬던 일본 노동·기업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직원의 부업을 권장하며 ‘조기 퇴근’을 용인하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지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투잡’을 인정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등장했습니다. 마침내 일본 정부도 앞장서서 부업을 권장하고 나섰습니다. 정부가 창업 및 기업 활동 활성화, 근무방식 개혁 등 ‘일하는 방식 개혁’을 위해 부업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노동인구 급감에 따른 일손 부족 현상이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변화상입니다.

통상 일본에선 본업과 동등한 수준의 다른 업무나 사업을 겸업, 본업에 비해 부차적인 일을 부업이라고 일컫습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기업용 표준 취업규칙에 있는 ‘허락 없이 다른 회사 등의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개정키로 하고 관련 준비에 나섰습니다. 기업용 표준 취업규칙에서 부업 · 겸업 금지 항목을 삭제하고 원칙적으로 부업을 용인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전문가 검토회의에 제출한 것입니다. 직장 이외에서 일하는 ‘원격 근무’에 대해서도 우려되는 장시간 노동의 방지책 등을 개정안에 담았습니다.

검토안에 따르면, 부업·겸업은 사전에 신청한 뒤 ‘근로제공에 지장’이 없거나 ‘기업 기밀누설’이 없다면 허용키로 했습니다. 재택근무와 관련해선 근로시간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을 명기키로 했습니다. 상사의 근로관리가 소홀이 되거나, 장시간 노동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심야나 휴일에는 메일 발송을 자제하고 사내 시스템에 접속을 제한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앞서 일본 교육부는 “비밀 유출 등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부업을 제한해선 안 된다”고 주요 기업에 공지하고 나섰습니다.

법 개정 움직임에 앞서 민간 기업들은 부업 허용에 더욱 적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부업을 두고 ‘본업에 충실치 못하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른 회사상과 업무관의 변화로 부업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평균수명은 길어졌지만 평생직장의 신화는 무너졌고, 사회는 일손 부족으로 나이가 들어도 은퇴를 허용하지 않게 된 측면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년 이후 삶을 대비하기 위해 부업을 마련하고자 하는 수요도 늘어난 것입니다.

5년 단위로 하는 일본 총무성 취업구조기본조사에서 2012년 현재 부업 활동을 하는 인구가 23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력파견회사 일본인재기구 조사에선 겸업·부업을 하고 싶다는 응답이 51.5%였습니다.

미쓰비시UFJ리서치앤드컨설팅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11.3%가 현재 부업이나 겸업을 하고 있으며, 19.8%가 과거에 부업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대략 일본 경제활동 인구 3명 중 1명꼴로 부업을 접한 것입니다. 주요 부업 형태는 다른 조직 근무, 상거래 및 온라인 거래 등이었습니다.

민간 기업에서 부업을 용인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전직경력조사에서 응답 기업(1150개)의 23%가 겸업·부업을 추진하거나 용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소프트뱅크는 취업 규칙을 개정해 1만8000여 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부업을 인정하는 방침을 세웠기도 합니다. 도쿄의 정보기술(IT) 대형 기업인 TIS는 “직원의 업무시간 외 활동까지 제약하는 것은 구식회사로 인식돼 인재 확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4월부터 부업·겸직을 허용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사이보즈도 사기 진작을 위해 직원이 다른 IT기업에서 일하거나 카레음식점 경영, 농업, 테니스 강사 등으로 활동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도쿄와 오사카 등 주요 도시에선 부업을 위해 새벽에 일찍 출근한 뒤 오후 5시에 조기 퇴근하는 직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전언입니다.

최근에는 공무원까지 부업이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나라현 이코마시는 내부 규정을 마련해 지난여름부터 공공성이 있는 단체에서 공무원이 부업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재직 3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시 업무와 이해가 상충하지 않는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부업으로 일하고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본의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은 법률에 따라 허가 없이 영리를 목적으로 기업에 근무하거나 사업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만 해당 지역의 일손 부족이 매우 심각해지면서 지역 축제나 행사를 담당할 인력을 찾기 힘들어져 발생한 현상입니다,

한편으론 부업을 허용하는 유연한 사회로 일본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부업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팍팍한 사회가 되고 있다는 ‘그늘’이 함께 있다는 생각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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