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무늬만 국제병원"
실질 운영주체 문제 삼아… "승인 취소하라" 요구 나서
정부, 지방선거 눈치볼까
시민단체 압박에 밀리면 개원 시기 또 연기 가능성
DJ 때 근거 마련했지만…
"의료 영리화 물꼬 틀 것"… 정치권 논쟁으로 허송세월
[ 이지현 기자 ]
시민단체들이 정부에 녹지국제병원 승인 취소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 개원이 불투명해졌다. 15년간 논란을 빚어온 투자개방형 병원 사업이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늬만 국제 병원이라는 시민단체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이 ‘무늬만 국제 병원’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뤼디그룹이 지분을 100% 투자했다고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 운영 주체는 국내 비영리 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24일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김수정 미래의료재단 이사가 녹지국제병원 사업단장으로 참석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녹지국제병원에 근무할 코디네이터들이 미래의료재단에서 교육을 받고 미래의료재단 이사와 재단 메디컬센터 대표가 병원장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는 녹지국제병원 운영에 국내 법인이 실질적으로 관여한다는 증거”라고 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조례에 따라 내국인이나 국내 법인은 우회투자 등을 통해 투자개방형 병원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 영리법인 허용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도지사가 허가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 측은 사업계획서를 검토했지만 국내 의료기관이 운영에 참여한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난달 24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일부 문제가 제기돼 확인했지만 근거가 없었다”며 “시민단체들이 구체적으로 문제 제기한 만큼 추가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는 “만약 병원 문을 연 뒤 국내 법인이 운영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허가를 취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논쟁에 15년간 허송세월
제주도는 오는 20일까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논의를 마무리하고 녹지국제병원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병원 허가 결정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를 통해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 승인을 받은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지난 8월 제주도에 개원 허가 신청을 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위원 임기 만료 등의 이유로 수차례 논의가 미뤄졌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문재인 정부에 ‘영리병원 허용을 반대한다’던 공약을 이행하라고도 압박했다. 이를 위해 녹지국제병원 개설 승인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개방형 병원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확대되면 최종 허가 여부조차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투자개방형 병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은 김대중 정부다. 2002년 1월 ‘동북아 의료허브 구상’이 발표된 뒤 같은 해 12월 외국인 전용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됐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5년 송도국제병원 우선협상대상자로 미국 뉴욕 프레스비테리안(NYP) 병원이 선정됐다. 하지만 법령 미비 등으로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해 2008년 협상이 결렬됐다. 그사이 투자개방형 병원 개설 범위는 제주도로 확대됐다.
인천시가 2009년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 서울대병원과 송도국제병원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지만 투자개방형 병원이 도입되면 국내 의료제도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막혀 결국 무산됐다. 한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외국인 거주 여건을 개선하고 외국 대학병원을 유치해 국내 의료 질을 높인다는 취지로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논의가 시작됐지만 의료 민영화 논리에 막혀 남아있던 투자자들조차 모두 떠났다”며 “국내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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