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다 지휘·감독 공무원 많은데 또 '증원'
시장활력 살리지 않고는 복지지속 불가능해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한국 경제는 지난 6일 ‘큰 정부’행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스 출신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8시에 떠나고’가 오버랩된다. ‘큰 정부의 길’은 지금은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이지만 폭풍우는 이미 잉태됐다.
2018년 예산은 2017년 본예산 대비 7.1% 증가했다. 7.1%는 2017년 본예산 증가율 3.7%의 두 배이며, 2017년 경상성장률 전망치 4.5%의 1.6배다. 세수는 일반적으로 경상성장률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2018년 예산은 적자재정을 꾸리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된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집권 5년간 재정적자를 172조원으로 계상하고 있다. 적자 계획을 사전에 명시한 정권은 이번이 처음이다. 적자재정을 공언한 것은 미래 세대의 자원을 미리 끌어다 쓰겠다는 것이다. 증세가 여의치 않으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는 ‘내 임기까지만(only in my term)’의 정책사고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예산 팽창은 구조적이다. 국가를 ‘최고의 고용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 증원 결정 과정을 보면 이런 주먹구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9500명, 국민의당은 9450명 증원을 주장했다. 9500명을 반올림하면 1만 명이 돼 50명을 깎았다는 것이다. 9475명은 중간선이다. 중앙 공무원 9475명 증원 외에 지방직 공무원과 교원 1만4900명을 증원한다. 내년에 세금으로 월급을 줘야 할 공무원 증원 규모는 총 2만4000명이다. 올해 추경을 통해 선발 절차에 들어간 1만3000명까지 합치면 3만7000명이다.
그동안 공무원을 안 뽑은 것도 아닌데 현장에서 공무원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장을 뛰는 공무원보다 지휘·감독하는 공무원이 많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조직 진단을 통해 현장인력 중심으로 인력을 재배치, 공무원 조직을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 증원은 소방, 경찰, 사회복지 등 공공서비스 제공으로 국한해야 한다. 민간 부문 고용은 세금을 벌어다 주지만 공공 부문 고용은 세금을 소진시킨다. ‘그리스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
좌파적 경제관에 경도돼 ‘부자 증세’에 집착한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법인세 증세로 연 2조3000억원의 세수 증가가 추산된다. 20조원에 달하는 2017년 세수초과분을 감안하면 큰 세수 증가가 아니다. 법인은 개인과 달리 부자 법인과 가난한 법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인세 인상은 주주, 근로자, 소비자 및 협력 업체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아 ‘법인세가 인상되지 않았으면 더 걷을 수 있을 세수’를 줄인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것이 법인세 인상이다. 법인세를 올리면서 일자리 창출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말하는 것은 ‘둥근 사각형’을 찾는 격이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확신편향도 복병이다. 최저임금 인상분의 일부(3조원)를 국고에서 보조하겠다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이 소득순환 차원에서 완결되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태엽이 풀리면 서는 자동인형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 민간 부문 급여를 국고에서 지원하는 나라는 없다.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이익집단 간의 ‘철의 삼각형’도 예산을 팽창시킨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전년 대비 20% 줄여 편성했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SOC 예산은 무려 1조3000억원이 증액됐다. 의원들이 쪽지 예산으로 자기 지역구에 몇 백억원씩 나눠 가져간 결과다. 예산 심의는 죽은 고래를 해체해 지역 예산을 불리는 경쟁과 다름없다.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 동의 없는 예산 증액은 위헌이다.
‘내 삶을 책임져 주는 국가’만큼 위안을 주는 말은 없다. 하지만 국가에의 의존이 타성화될수록 민간 부문 활력은 저하되고 국가예산은 팽창할 수밖에 없다. 복지는 일단 도입되면 속도방지턱을 설치할 수 없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말하는 ‘노예의 길’이 될 공산이 크다. 민간과 시장의 활력을 살리지 않으면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마지막 1원이 개인 주머니와 국고 중 어디에 남아야 할까.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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