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질주.’ 지난달 목숨을 걸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에 대해 탈북 여성 지현아 씨가 울먹이며 한 말이다. 엊그제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북한인권토론회장에서였다. 토론자로 나선 지씨가 자작시 ‘정말 아무도 없나요’를 낭송했을 때 장내는 더욱 숙연해졌다. “무서워요 거기 아무도 없나요. 여긴 지옥인데 거기 누구 없나요.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저 문을 열어주지 않네요… .”
1998년 2월 처음 중국으로 탈출한 지씨는 2007년에야 한국에 정착했다. 그녀는 3차례 강제북송과 4번의 탈북이라는 드라마 같은 고난의 삶을 살았다. 사실 아주 새롭다 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의 증언 또한 충격적이었다. “마취도 없이 강제 낙태를 당했고, 교화소에서는 메뚜기와 쥐 껍질을 벗겨 먹었고, 사람들은 설사로 바짝 마른 상태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올해도 북한 인권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개선을 촉구했다. 잇달아 4년째다.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논의 자체를 막은 중국 반대를 극복한 미국 외교의 힘이다.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것은 2004년.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 인도적 지원, 탈북자 보호를 위한 법이었다. 2005~2008년 매년 2400만달러 예산이 이 법을 근거로 집행됐다. 이 법은 4년, 5년씩 두 번 연장돼 올 연말 시효가 종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 의회는 2022년까지 더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난달 상원 외교위원회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북한인권법은 일본에도 있다. 북한인권 개선 노력과 함께 일본의 주요 관심사인 자국민 납치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담긴 법이다. 미국에 뒤이어 2006년에 공포됐다. 인권 문제를 선박입항 금지, 외국환 제재와 연계할 정도로 일본의 관심도 구체적이다.
우리도 북한인권법은 제정했다. 2005년 발의된 뒤 지난해에야 빛을 본 법이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부 노력, 국제협력 강화 등 필요한 기본 조치가 담겨 있다. 북한인권재단 설립 조항도 들어 있다. 하지만 그런 재단은 아직 없다. 정부도, 국회도 법의 시행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2017년 올해의 인권상’을 받은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가 수상식에서 “북한인권재단 같은 국가적 기구를 빨리 발족시켜, 정부가 지원하고 민간이 업무를 맡는 형태로 인권 유린 실태를 기록하고 자료화해야 한다”고 역설한 기구다.
법만 그럴듯하게 만들어뒀다고, 한 번씩 규탄성명서나 낸다고 북한 인권이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탈북자 단체의 전유 아젠다도 아니다. 공조직과 예산을 가진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국내 인권 관련 단체들도 북쪽으로 관심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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