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퀴즈’나 ‘퀴즈아카데미’는 한 시절을 풍미한 TV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우승자들의 암기력과 추리력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런 프로를 보며 수많은 학생이 향학열을 불태웠으니 사회적으로도 큰 공헌을 한 셈이다. 그 전통을 ‘도전 골든벨’이 잇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방송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100명이 도전했다가 탈락하고 마지막 남은 학생이 친구들 응원 속에 50번 골든벨 문제를 푼다. 그 ‘천재’는 긴장하고 선생님들은 손을 모아 기도까지 한다. 고난도의 마지막 문제는 이런 식으로 출제된다.
“1525년 중종 20년 성현이 지은 것으로 문장이 아름다워 조선시대 수필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암기 잘하는 '천재'는 TV 속에
최종 도전자가 자신이 없는지 고개를 떨군다. 그러다가 ‘죄송합니다’라고 적은 작은 칠판을 힘없이 들어 올린다. 학생들이 뛰어나오며 ‘괜찮아~’를 외친다. 보기에 짠하고 애틋하지만 이 무슨 코미디인가. TV를 보던 시청자가 ‘1525년’ ‘성현’ ‘수필’이라는 키워드만 스마트폰에 입력해도 정답 ‘용재총화’가 곧바로 나오니 말이다.
장학퀴즈와 퀴즈아카데미 시절엔 출연자가 시청자보다 훨씬 똑똑했지만 이제는 역전됐다. 정답을 언제든 검색할 수 있는 시청자들이, 정보가 차단된 공간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출연자를 지켜볼 뿐이다.
누구나 손안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지 10년째, 세계의 인재상은 급변했다. 이런 변화와는 달리 우리의 인재상은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13~1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고 있는 ‘글로벌 인재포럼 in 베트남 2017’에서 만난 베트남 리더들이 묻는 질문은 한결같다. “한국 기업들이 생각하는 인재란 어떤 사람인가?”이다. 1년 새 1000개가 넘는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삼성전자 현지법인만 해도 10만 명이 넘는 베트남인들이 일하고 있으니 이들이 한국 기업의 인재관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 함께 해결하는 융합형으로
새로운 제조기지에서 우리의 과거를 재현한다고 해서 과거의 인재형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미 베트남은 스마트폰 ‘천지’다. 인터넷 이용자가 전 국민의 5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PC를 통해 인터넷을 경험했다가 스마트폰으로 넘어온 우리의 발전 단계를 베트남인들은 한 번에 건너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예를 보면 명확해진다. PC를 만져보지도 않았고 신용카드도 없는 중국 젊은이들이 ‘알리페이’로 결제하는 데는 ‘선수’다. 핀테크(금융기술) 활용에서 중국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1세기형 한국 인재상은 비즈니스 세계에선 이미 방향이 그려져 있다. 로봇기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다른 분야의 지식까지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인재가 이미 비즈니스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백과사전식 지식 암기가 아니라 남들의 장기를 활용하면서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 새로운 리더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퀴즈방송의 예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다. 스마트폰이라는 엄청난 컴퓨터를 회의할 때마다 꺼달라고 하는 게 여전한 관행이다. 내비게이션 때문에 길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그 덕분에 ‘가지 않은 길’도 과감히 갈 수 있는 모험심이 커진 점을 상기해야 한다. 한가해 보이는 ‘인재 논의’가 나라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방향타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21세기형 인재상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베트남 인재포럼이었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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