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지리는 끝났다?… '아랍의 봄'이 어떻게 흘러갔나 보라

입력 2017-12-14 19:07   수정 2018-03-14 11:10

지리의 복수

로버트 카플란 지음 / 이순호 옮김 / 미지북스 / 548쪽│2만원

시공간적 제약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강한 지리 중요성 주목

SNS 매개로 촉발된 '아랍의 봄'
봉기 지속되면서 국가별로 분절
각국의 환경·문화 달랐기 때문

한반도 DMZ는 임의적 경계
지리의 힘 따라 언젠간 사라져



[ 송태형 기자 ]
교통·통신 기술 발달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세계가 가까워지고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국경이나 지리의 힘과 역할이 감퇴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 칼럼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5년 출간한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혁명적인 기술과 개념으로 시간과 공간의 벽이 무너지는 현상을 조명하면서 ‘평평한 세계’를 선언했다.

미국 정부기관과 학계, 언론을 오가며 30여 년간 국제정세를 분석해온 정치평론가이자 작가,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카플란의 관점은 다르다. 그는 지리의 복수(원제:The Revenge of Geography)에서 “제트기와 정보 시대에 접어들면서 잃어버린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며 지리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카플란이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는 기술 발전과 세계화의 흐름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화는 확실히 지리나 국경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지리는 잊힐 수는 있어도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세계화 시대에도 인간의 행동은 여전히 지리가 부과한 물리적 요소의 제약을 받게 된다며 21세기에도 인간사의 행로는 지리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사건들에 얽매이면 인간의 선택이 마냥 중요해 보이지만, 몇백 년의 기간을 조망하면 지리의 역할이 부각된다고 설명한다.

카플란은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이를 논증한다. 그중 하나가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돼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확산된 반(反)정부 시위를 통칭하는 ‘아랍의 봄’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격변의 첫 단계에서 지리는 새로운 통신 기술의 힘에 밀려 패하는 듯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위성TV를 통해 아랍 전역의 시위자들이 단일 집단을 형성하자 이집트, 예멘, 바레인 등 서로 공통점이 없는 나라의 민주주의 옹호자들이 튀니지발 혁명에 감화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봉기가 지속되자 혁명의 열기는 곧 ‘분절’됐다. 나라별로 특유의 내러티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내러티브에는 각 나라의 오랜 역사와 지리가 영향을 미쳤다. 자연적 응집력이 강하고 오랜 문명의 역사를 지닌 튀니지와 이집트는 온건한 형태의 독재 정치만으로 나라를 결집할 수 있었다. 반면 산악지대로 부족주의와 분리주의 집단의 중요성이 커진 예멘과 민족성, 종파성에 기초한 분열의 요소를 감추고 있는 시리아는 보다 극단적인 정치체제를 필요로 했다.

카플란은 ‘지리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관점에 심각한 경고음을 보낼 만한 일군의 사상가들을 소환한다. ‘지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핼퍼드 매킨더를 비롯해 니컬러스 스파이크먼, 카를 하우스호퍼, 페르낭 브로델 등 주로 지리의 중요성을 역설한 지리학자와 역사가들이다. 책의 전반부에선 이들의 견해를 깊이 있게 제시하고, 후반부에선 이들의 ‘지혜’를 통해 유럽에서 중동, 인도를 거쳐 중국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일과 앞으로 벌어질 개연성이 높은 일을 논한다.

이 중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관심을 끌 만한 대목은 중국과 연관된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의 지리가 가장 불완전한 곳은 정치적 국경이 변할 개연성이 높은 한반도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목표는 역동적인 중산층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한국과 완충국 역할을 할 수 있는 보다 현대적이고 독재적인 고르바초프식 정권 수립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은 중국도 통제하지 못한다. 만일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대체로 서울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고, 중국은 ‘통일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될 것이다.

카플란이 2006년 한반도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을 때 느낀 소회도 새겨둘 만하다. 그가 DMZ에서 압도적으로 느낀 것은 ‘폭력’이었다. 하지만 카플란은 “철조망과 지뢰밭 양쪽에서 분출되는 증오감도 결국 예측 가능한 내일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20세기 분단국 독일, 베트남, 예멘에서 보듯이 분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든 통일의 힘은 결국 예기치 않게, 또 때로는 폭력적이고 매우 빠른 속도로 개가를 올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의 DMZ도 결국 베를린장벽과 마찬가지로 지리적 논리와는 상관없는 임의적 경계이기 때문에 남북한도 통일 독일처럼 통일 한국을 기대하거나, 적어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카플란은 이 대목에서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다시 언급한다. “지리와 문화의 힘은 어느 시점에서 다시금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자연적 국경지대와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 경계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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