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국립국어원이 올해 3분기 표준국어대사전 정보수정 사항을 공개했다. 그중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잘생기다’였다. 품사를 형용사에서 동사로 바꿨다. 누리꾼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웃했다. ‘잘생기다’에 동작성이 있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 아닌가? 이게 의문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잘생기다’를 동사로 분류해 왔다.
의미는 품사 가르는 기준 안 돼
국어에서 품사를 분류하는 기준은 단어 의미와 형태, 기능이다. 이때 의미는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 객관적으로 품사를 가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그보다 형태와 기능을 중심으로 살핀다.
‘잘생기다’를 형용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의미가 동작이 아니라 상태를 나타낸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즉 동작성이 있으면 동사, 상태나 성질을 나타내면 형용사라고 구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별은 안정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늙다’는 동사일까 형용사일까? 대부분은 ‘늙다’가 동작성보다 상태의 의미를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형용사로 보면 될까? 그렇지 않다. 이 말은 동사다. “너, 그렇게 고민 많이 하면 빨리 늙는다” 같은 데서 보듯이 동사의 대표적 활용 지표인 ‘-는다’가 가능하다.
‘잘생기다’도 마찬가지다. 의미상으로는 상태를 나타내지만 형태상으로는 동사다. 그러면 형태란 게 무엇인가? 이걸 이해하는 게 핵심이다. 이번 정보 수정의 근거가 된 것이기도 하다. 배주채 가톨릭대 국어국문과 교수가 이에 관해 잘 구명했다.(<‘잘생기다’류의 품사, 한국학연구>. 아래는 이 논문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잘생겼다”는 완료상… 동사에서만 가능
품사 분류에서 형태를 살핀다는 것은 동사/형용사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를 본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게 △종결어미 ‘-는다/ㄴ다’가 붙어 현재를 나타내면 동사로 본다는 규칙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종결어미 ‘-다’가 붙어 현재를 나타내면 형용사다. △선어말어미 ‘-었’이 붙어 현재를 나타내면 동사다. △관형사형 어미 ‘-는’이 붙어 현재를 나타내면 동사다. 이 네 가지 기준 중 하나만 만족하면 해당 품사로 분류한다.
‘잘생기다’는 선어말어미 ‘-었’이 붙어 현재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동사로 판정됐다. “그는 참 잘생겼다”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상태를 나타낸다. 대표적인 과거 표시 형태소인 ‘-었’은 현재완료상을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합격 소식을 지금 막 들었다”에서 ‘들었다’는 과거시제가 아니다. ‘지금 막’이라는 부사와 어울려 쓰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이익섭/임홍빈, ‘국어문법론’). 이에 비해 ‘예뻤다, 슬펐다’처럼 형용사에서는 ‘-었’이 늘 과거를 나타낸다. 안상수 전 금성출판사 사전팀장은 “이런 완료상은 오로지 동사에서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잘생기다’는 또 어미 ‘-다’가 붙어 현재를 나타낸다는 규칙에서도 벗어난다. ‘기쁘다, 자랑스럽다’처럼 형용사는 모두 그 자체로 기본형이면서 현재 서술형으로 쓰인다. 하지만 “그는 참 잘생기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형용사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생기다’가 동사라고 해서 ‘잘생겨지는 중이다’ ‘잘생겨라’ 같은 표현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잘생기다’는 형태상 동사에 해당하지만 전형적인 동사의 특징을 갖추지는 않았다. 동사와 형용사를 가르는 대표적인 기준인 ‘-는다/ㄴ다’도 배척하고, 명령형 청유형도 안 된다. 활용에 제약이 많은 동사라는 뜻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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