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 스타트업 천국 된 싱가포르… 규제완화로 대규모 투자 유치

입력 2017-12-18 09:04  

벤처 생태계 만드는 싱가포르

稅 감면·규제 완화·지재권 보호
창업에 필요한 정책 적극 지원
올 2분기 7억달러 투자 이끌어내




싱가포르가 미국과 중국을 넘어 벤처캐피털(VC)의 새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찾는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하며 투자금 유치에 발 벗고 나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美·中 넘어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10월 싱가포르의 버텍스벤처(2억1000만달러), 웨이브메이커파트너스(6600만달러), 비커스벤처파트너스(2억3000만달러)가 한꺼번에 투자금 모집을 완료했다. 각각 역대 최대 조달액이다. 전달에는 토코피디아, 트래블로카 등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이스트벤처가 3000만달러를 모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싱가포르가 미국과 중국을 넘어 새로운 VC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 VC가 투자 유치 보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동남아시아 기술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어서다. 싱가포르 내 기술기업은 물론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인접 국가 스타트업과의 접근성도 좋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싱가포르 정부가 VC를 유치하기 위해 규제 완화, 지식재산권 보호, 공적자금의 초기 투자 할당 등 정책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의 벤처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세계 벤처투자 규모는 390억달러(약 44조1090억원)에 이른다. 이 중 미국이 215억달러로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아시아 투자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 투자 비중은 2013년 10.2%에서 올해 29%(3분기 기준 123억달러)로 뛰어올랐다. 중국 벤처투자 규모가 가장 많은 102억달러를 차지한다.

싱가포르의 투자금 유치 규모도 상당하다. 싱가포르는 게임회사 ‘시(Sea)’가 5억5000만달러를 투자받는 등 지난 2분기 벤처투자 유치 7억2530만달러를 기록했다. 시는 최근 미국 증시에서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면서 싱가포르 스타트업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스타트업 생태계 집중 구축 효과

싱가포르가 벤처투자처로 부상한 것은 정부의 스타트업 정책 덕분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호주 텔스트라그룹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무루 D 싱가포르’를 이끄는 폴 마이어스 팀장은 “싱가포르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집중 투자한 데 힘입어 양질의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2014년 ‘스마트 네이션’을 비전으로 선포했다. 이 정책은 정보통신기술(ICT)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스라엘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창업을 독려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스타트업 네이션’을 내세운 것과 비슷하다.

그 결과 싱가포르의 디지털 경제 관련 교육예산 지출도 대폭 늘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타트업게놈이 올초 발표한 ‘2017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에서 싱가포르가 미국 실리콘밸리를 제치고 스타트업 인재 1위 국가에 오른 배경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로 유리한 창업 환경을 제공하며 글로벌 스타트업을 유인하고 있다. 잠재적 파트너를 연결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세계에서 무인 자율주행차 테스트를 법적으로 허용한 국가는 싱가포르와 핀란드 단 두 곳뿐이다. 싱가포르의 핀테크(금융기술)산업 육성 정책에 호응해 미국의 블록체인 스타트업 리플은 싱가포르를 아시아 거점으로 삼았다.

기업 주도형 벤처투자 증가세

싱가포르 VC에 몰리는 투자자는 고액 자산관리를 담당하는 패밀리오피스부터 다국적 기업, 대기업까지 다양하다. 특히 대기업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정글벤처가 지난 4월 투자한 시드플러스에는 글로벌 금융회사 피델리티인터내셔널과 IT보안 기업 시스코시스템스가 자금을 댔다. 버텍스벤처가 이달 모집한 2억1000만달러 펀드에는 태국의 카시콘은행과 대만의 캐세이생명보험이 투자했다.

폴 포드 KPMG 파트너는 “보유 현금이 많은 대기업이 벤처투자나 인수합병을 통해 해외 혁신기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허란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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