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부자'는 옛말… 전방위 자금조달 나선 롯데

입력 2017-12-18 17:35   수정 2017-12-19 09:31

사드 여파로 줄줄이 실적 부진… 신용등급도 '흔들'

계열사, 유동성 확보 '잰걸음'

중국보복에 발목 잡혀 실적 악화
자금조달처 회사채 대신 CP로

롯데쇼핑, 1500억 CP 발행
호텔롯데도 사모채 규모 늘려
시장도 신동빈 회장 재판 '주목'



[ 김진성 기자 ] ▶마켓인사이트 12월18일 오전 5시17분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영업환경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롯데그룹이 자금조달 전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과 호텔롯데가 공모 회사채 대신 사모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 비중을 늘리고 있다. 실적 부진에 따른 신용도 악화와 신동빈 그룹 회장의 재판 등 악재가 겹치자 부담이 덜한 자금 조달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모채·CP시장으로 ‘이동’

롯데쇼핑은 지난 15일 3년 만기 CP 1500억원어치를 공모로 발행했다. 이자(연 2.455%)를 미리 액면가격에서 차감해 회사에는 1389억원이 들어왔다. 이 회사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내년 2~3월 만기가 돌아오는 1500억원어치 CP를 상환하는 데 쓸 계획이다.

채권시장에선 롯데쇼핑이 평소와 달리 3년 만기 차입을 회사채가 아니라 CP를 발행해 조달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1월(4000억원)과 6월(3600억원) 공모 회사채를 찍어 7600억원을 조달했다. 채권 만기는 가장 짧은 것이 3년, 가장 긴 것이 7년이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선 발행이 전무했다. 대신 상반기 500억원이던 사모 회사채 발행을 1500억원으로 늘렸다. 1년 만기(364일) CP 발행 규모도 1500억원에서 2500억원으로 증가했다.

호텔롯데의 자금 조달 방식도 비슷하게 바뀌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2500억원 규모 채권을 찍은 뒤 공모 회사채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신 상반기 2000억원이던 사모 채권 발행 규모를 하반기 들어 3000억원으로 늘렸다. 1년 만기 CP 발행 규모는 상반기(6900억원)와 하반기(6200억원) 모두 6000억원대를 유지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회사채시장이 조기 폐장하는 분위기인 데다 나쁘지 않은 금리 조건으로 CP 투자를 원하는 기관투자가가 있어 이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고 설명했다.

실적 악화에 흔들리는 신용도

롯데 계열사들이 투자심리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발행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자금 조달 수단을 택하고 있다는 평가다. 사모 회사채와 만기 365일 미만 CP는 증권신고서를 내지 않아도 발행할 수 있다.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수요예측(사전청약)도 하지 않는다. 만기가 365일이 넘는 CP는 공모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수요예측 의무는 없다. 공모 채권 발행과정에 비해 회사의 악재가 덜 노출된다.

롯데쇼핑은 올해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1~3분기 매출은 21조99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 영업이익은 3692억원으로 33.4% 감소했다. 회사 기초체력(펀더멘털)엔 변화가 없음에도 한·중 외교관계 악화에 발목이 잡혔다. 중국 대형마트 대부분이 영업정지를 당하는 등 현지 사업환경이 악화하면서 장기간 공들인 중국에서 발을 빼기로 했다.

호텔롯데는 올 1~3분기 65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중국 관광객 감소세가 이어지며 주력인 면세사업 이익이 대폭 줄어든 여파가 컸다. 이 기간 면세사업 영업이익은 3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17억원 줄었다.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은 두 회사의 신용도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5일 한국신용평가에 이어 한국기업평가도 호텔롯데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떨어뜨렸다. 두 신용평가사는 올 하반기 들어 롯데쇼핑 신용등급(AA+)에도 ‘부정적’ 전망을 달아놓았다.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 임원은 “양사 모두 CP 신용도는 여전히 가장 높은 ‘A1’등급”이라며 “금리 산정에서 CP 발행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수 일가·경영진 재판 결과가 변수

시장에선 ‘오너 리스크’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신 회장은 경영비리와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해선 징역 10년을,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7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에 대해선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오는 22일 경영비리와 관련한 1심 판결에서 신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각 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많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의 재판 결과에 따라 롯데그룹의 자금 조달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서 진행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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