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가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약 600년 전이다. 독일 제빵사들이 1419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성령구빈원 앞에 트리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그 지방 역사서에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독일 이외 유럽으로 전파된 계기를 제공한 사람은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였다. 루터는 1521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산책하던 중 평소 어둡던 숲이 등불을 켜 놓은 듯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롱한 달빛이 눈이 소복하게 쌓인 전나무에 비치면서 주위를 환하게 밝혔던 것이다.
이 장면을 본 루터는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은 전나무와 같다. 한 개인은 어둠 속의 초라한 나무와도 같지만,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변에 아름다운 빛을 비추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이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 전나무를 집으로 가져왔다. 여기에 눈 모양의 솜과 달빛을 대신해 반짝이는 리본과 촛불을 장식했다.
독일 각지에서는 옛날부터 동지(冬至)나 신년에 생명력의 상징인 침엽수에 수확을 의미하는 사과를 달았고, 밝고 환한 태양을 상징하기 위해 촛불 장식도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기독교와 이런 독일의 전통 수확제 행사가 결부돼 탄생했다는 설(說)이 유력하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나무를 많이 사용하게 된 데는 전설이 있다. 8세기께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 오딘이 신성하다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 풍습을 중지시키기 위해 옆의 전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 데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쟁터 한가운데에도 등장했다.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에서 참호전에 지친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은 성탄절만이라도 휴전하자고 서로 제의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한 뒤 주변에 모여 캐럴을 부르며 맥주를 함께 마시기도 했다. 병사들은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에서 ‘크리스마스 휴전’ 소식을 전했다. 각국 사령부는 병사들 문책 등 조치를 내렸지만 이 일화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으며,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소재가 됐다.
전 세계에서 제주도가 원산지인 구상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프랑스 선교사가 1907년 한라산에서 소나무과의 일종인 구상나무를 보고 크리스마스 트리로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채집한 뒤 영국 식물학자에게 건네줬다. 이후 미국이 이를 넘겨받아 90여 종의 신종을 개발해 모두 특허로 등록했고, 재산권도 갖고 있다. 원산지인 한국은 로열티를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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