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경제보좌관 '비공개' 요청
뒷말 많자 사흘 만에 '없던 일로'
참석 예정 기업들엔 뒤늦게 통보
기업들 "황당하고 아쉽다"
"공식채널 경제수석 아닌 보좌관이
만찬 요청할 때부터 말 많았다
청와대 내부 역할분담 이뤄지지 않은 듯"
창구 역할 한 대한상의도 난감
[ 장창민/좌동욱/고재연 기자 ]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A그룹 사장이 19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8대 그룹 경영진과 비공개 만찬을 하려다 돌연 취소한 것을 두고서다. 그는 18일 오후 언론에 뜬 기사를 보고 나서야 20일 만찬이 취소된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만찬이 취소된 게 정말 맞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서로 좋은 뜻을 갖고 연말에 귀한 시간을 냈는데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만남이 취소된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답답해했다. 그를 포함한 8대 그룹 경영진은 이날 오전 10시께 비공개 만찬이 취소됐다는 ‘공식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해 살까 부담 느낀 청와대
당초 비공개 만찬에는 김 보좌관을 비롯해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장동현 SK(주) 사장, 하현회 (주)LG 부회장, 황각규 롯데 사장, 오인환 포스코 사장, 홍순기 (주)GS 사장, 여승주 한화 사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김 보좌관이 비공개 모임을 먼저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청와대는 지난 15일 8~10대 그룹 부사장급 또는 실무 임원이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창구 역할을 맡은 대한상공회의소는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9개 그룹이 참석하는 쪽으로 검토했다가 마지막에 8개 그룹이 참여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현대중공업까지 포함될 경우 범현대 그룹만 두 곳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대한상의와 기업들 간 논의 과정에서 사장급 이상 경영진이 참석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같은 소식이 언론을 타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김 보좌관이 나서서 비공개 만찬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측이 매우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최순실 사태’ 이후 청와대와 기업인 간 비공식 만남 자체가 금기시돼온 분위기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B그룹 사장은 “비공개 만찬 사실이 알려진 뒤 김 보좌관이 기자들로부터 전화 공세에 시달렸다고 들었다”며 “이후 청와대에서 취소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중소기업들을 의식해 만찬을 미룬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대기업 회장들과 만찬을 한 뒤 중소·중견기업인 및 소상공인들과도 만나겠다고 했는데 이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져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또 대기업 쪽 사람들을 만나면 괜한 오해를 살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내 비공개 회동 어려울 듯
청와대 내부에서 교통정리가 덜 돼 혼선을 자초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정책실장과 경제수석, 경제보좌관 사이에 긴밀한 조율 없이 덥석 만찬을 잡았다가 뒷말이 무성하자 사흘 만에 ‘없던 일’로 했다는 지적이다. C그룹 대관담당 임원은 “공식 채널인 경제수석이 아니라 대통령 보좌 역할을 맡은 경제보좌관이 만찬을 요청했을 때부터 말이 많았다”며 “청와대 내부에서도 제대로 역할 분담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기업들 사이에선 ‘황당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올해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부총리, 공정거래위원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앞다퉈 기업인들을 소집한 데 이어 경제보좌관까지 만찬을 요청했다가 갑자기 취소하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D그룹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 비공개 면담을 하고 난 뒤 기업들이 갖은 고초를 겪었는데 이번에 또 비공개 만찬을 제의했다가 시끄러워지자 이를 취소한 게 납득이 되느냐”고 했다. 반면 말 한마디 제대로 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기회 자체가 없어진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있다.
중간에서 창구 역할을 맡았던 대한상의도 난감해하고 있다. 비공개 만찬 정보를 대한상의가 흘린 것 아니냐는 청와대의 눈총을 받고 있어서다. 비공개 만찬이 어그러지면서 기업들로부터도 타박을 받았다.
연내 비공개 회동이 성사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청와대가 참석 기업 범위와 시기를 조율하겠다고 하지만, 뒷말이 많은 비공개 회동을 다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의 만남은 단순히 친목 도모를 위한 식사 자리가 아니다”며 “만나는 방식과 과정, 의제 등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창민/좌동욱/고재연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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