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창업자들은 회사를 차린 뒤 3~4년차에 위기를 맞는다. 여러 창업경진대회에서 입상하며 조금씩 모은 초기 자금은 시제품을 개발해 한 두차례 시장 검증을 받고나면 바닥을 드러낸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하고 싶어도 추가 투자 없인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게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들은 설립 3년 만에 절반이 시장에서 사라진다. 이 시점을 창업자들은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라 부른다.
데스밸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청년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서울대와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이하 제네시스)가 손 잡았다. 현대차는 자체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소유주들의 기부를 받고 그만큼을 회사가 더 얹어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서울대는 매년 10개 팀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기술개발에서 투자유치까지 창업 성공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20일 서울대 공과대학과 제네시스에 따르면 두 기관은 19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대학(원)생 스타트업 경진대회 및 창업지원사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매년 전국 단위 창업경진대회를 열어 10여개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이들을 장기 지원해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시키는 창업지원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이번 협약의 골자다.
서울대와 제네시스는 다양한 부분에서 여타 창업지원사업과 차별화를 꾀했다. 기부와 투자가 혼합된 재원 마련 방식은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대차는 자체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모델명: EQ900, G80, G70) 소유자로부터 기부를 받고 해당 액수만큼 현대차가 매칭펀드를 조성해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제네시스 소유자들이 기부하는 것은 구매시 평균 20만원 가량 지급되는 멤버십 포인트다. 제네시스 관계자는 “미사용률이 높아 멤버십 포인트 상당 부분이 자동 소멸되는 상황”이라며 “인수 시 구매자들의 의사를 물어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기부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간 제네시스 판매량이 6만~7만대에 달하는 만큼 연간 수십억원대의 펀드가 마련될 것을 서울대측은 기대하고 있다. 첫 해는 제네시스가 자체적으로 조달한 3억원으로 출발한다. 내년 전국 단위 창업경진대회를 열어 10개 이내의 창업팀을 발굴하고, 팀당 2000만~3000만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프로젝트를 통해 집중 지원하는 대상은 ‘프리시드’(pre-seed) 단계의 스타트업들이다. 프리시드는 아이템 개발엔 성공했지만 아직 벤처캐피털(VC), 엔젤투자자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기 전이라 종잣돈(시드머니)가 부족한 단계를 뜻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곽승엽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자금 고갈, 경영 노하우 부족 등 기술력 외의 이유로 꽃을 채 피워보기도 전에 사그라드는 프리시드 단계 스타트업이 많다”며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이들이 데스밸리를 넘어 유니콘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는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창업팀의 성공을 위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할 계획이다. 학내 창업공간을 지원하고 공대 교수, 전직 대기업 임원 출신인 산학협력중점교원 등 학내외 전문가들로 구성한 자문단을 꾸려 특허·마케팅·재무 등 다양한 분야의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국내외 유수 VC를 유치하고,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에서의 프리젠테이션 기회 등도 주선한다. 차국헌 서울대 공대 학장은 “기부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내실있게 청년 창업자들을 도울 것”이라며 “단 한 팀이라도 세계인 모두가 아는 최고의 스타트업을 길러내겠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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