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만에 최대 감세
법인세 실효세율 21%→9%
설비투자액 100% 감가상각
해외 유보금 들여오면 감세
미국에 있는 해외기업 자회사
상표권·수수료 등 공제 안해
한국 기업들 고민 커질 듯
[ 김현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서명할 예정인 세제개편법은 한마디로 ‘기업 천국’을 만드는 법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14%포인트 낮췄다.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하면 그해에 감가상각을 100%까지 인정해준다. 미국으로 해외 유보금이나 이익을 들여올 때도 세금을 깎아준다. 미국이 글로벌 기업들에 투자 초청장을 보낸 격이다.
◆법인세 실효세율 내년부터 ‘9%’
내년부터 세제개편법이 발효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법인세율 1위였던 미국 순위가 13위로 내려간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현재 21% 수준인 미국 기업들의 실효세율이 내년엔 9%로 내려간다. 이후 몇몇 한시적 감세 조치가 종료되면서 2027년 18% 수준이 될 것으로 관측됐다. 법인세율 인상(22%→25%)으로 대기업의 실효세율이 20%대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기업들로선 미국 기업에 뒤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 투자 유인책이 생겼다는 뜻이다. 개빈 에킨스 미국 조세재단 이코노미스트는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매기는 법인세까지 포함해도 미국의 전체 법인세율은 25% 정도로, 많은 다른 나라보다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법인세율 인하가 가시화하자 일본 정부도 29.97%인 법인세율을 10%포인트가량 떨어뜨리겠다는 방침을 최근 정했다. 모건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 수석글로벌전략가이자 신흥시장 투자부문 대표는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국이고 기업 경쟁력도 최고 수준인데 법인세율 인하로 더 강해질 것”이라며 “한국의 법인세율 인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 세원잠식방지세에 촉각
세제개편법은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약 1630조원) 감세를 골자로 한다. 31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감세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당)은 “미국을 다시 기업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세제개편”이라고 강조했다.
세제개편법에는 기업을 위한 세금 조항이 가득하다. 감세액 1조5000억달러 가운데 1조달러가량이 법인세율 인하와 관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최저 20%를 매기던 기업 최저한세(AMT)도 폐지돼 실효세율까지 낮아진다.
목표는 기업 세금 경감을 통한 투자와 고용 확대다. 감세를 통해 고용·투자가 늘어나면 중산층 소득까지 덩달아 증가하는 ‘낙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하면 그해에 감가상각을 100%까지 인정해주기로 했다. 영업이익이 많이 나는 해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법인세를 안 내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애플 구글 등이 해외에 쌓아놓은 수조달러의 현금을 미국 내로 들여오면 법인세율보다 낮은 15.5%(비현금자산은 8%)의 일회성 세금만 매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과 관련된 조항으로는 세원잠식방지세(BEAT)가 신설됐다. 해외 기업이 세운 미국 자회사가 해외 관계사에 내는 돈이 많으면, 과세표준에 부과하는 20% 법인세액과 조정과세표준(과세표준+해외 관계사 지급액)에 부과하는 10% 중 큰 금액을 과세하는 조항이다.
관계사 지급금액 중 재고자산(상품) 원가는 공제하지만 상표권, 수수료 등은 공제해주지 않는다. 해외 관계사에 상표권, 수수료 명목으로 이익을 넘기지 말라는 것이다. 대책을 고민하는 한국 기업이 많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