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위원장 선거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현장·모바일·ARS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 1차 투표에서 모바일 투표를 하루 연장했다. 오류 발생 탓이라고 하지만 유효 투표율 50%를 넘기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차 투표 이후 이어지는 결선투표는 집계 누락 등으로 연기됐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재투표까지 이뤄졌다. 세 결집을 투쟁 동력으로 삼아온 노동세력이 조합원을 투표장으로 이끌어 내는 데도 힘에 부쳐 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조합원보다 조직 우선
1차 재투표 결과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 투표를 한다. 결선투표 유력 후보들은 세 결집이 힘들어진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낼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김명환 후보는 2013년 수서발 KTX 설립 반대를 내걸고 철도파업을 이끌었다. 이호동 후보는 2005년 세계무역기구(WTO) 반대 홍콩 시위와 2002년 발전노조 파업을 주도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인데, 지도부와 조합원이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거나 “조직 결속을 높이려는 극단적 투쟁을 벌일까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그들만의 목표’를 명확히 했다. 최근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무실을 점거 농성하면서다. 구속 노동자 석방,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 등을 요구했지만 방점이 찍힌 곳은 ‘한상균 위원장 석방과 자신의 수배 해제’였다.
파리바게뜨의 비정규직 제빵사 5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노동계는 ‘조직 우선’을 노출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공공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는 파리바게뜨 제빵사 1000여 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데 이어 제빵사 과반수를 확보해 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즉각 반박했다. 연대를 통해 회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한다는 선에서 의견을 모았지만 봉합된 것은 아니다. “정규직화를 이슈화한 공로로 조합원을 늘리려는 민주노총과 대표노조 지위를 얻어 세를 확장하려는 한국노총의 근본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것(대기업 노무담당 임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제는 '나 몰라라'
노동계가 ‘그들만의 리그’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은 진즉에 나왔다. 노동시장 구성인자는 노(勞)와 사(使), 정(政)이다. 셋 간에 치우침은 없어야 한다. 지금 노동시장은 ‘노동존중 사회 실현’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사(使)의 대리인 격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손발이 묶인 상태다. 노동시장의 심판격인 정(政)은 청구서로 바뀌어 날아들고 있는 광화문광장의 깃발을 외면할 수 없어 엉거주춤이다. 정(政)은 심지어 노(勞)의 요구를 여과 없이 고스란히 정책을 집행하는 데 쓰기도 한다.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줄이려는 중견·중소기업의 생존 노력으로 이어지면서 이곳의 근로자를 실직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연내 정규직화’에 들떴던 비정규직 근로자 상당수는 여전히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 기존 정규직에 비해 급여와 처우는 물론 인사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는 정규직 전환자들도 부지기수다. 모두 심각한 노동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니 한탄 섞인 질문이 자연스레 나오는 거다. ‘역시 그들만의 리그인가.'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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