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죽은 남편 따라간 인도 여인은 왜 즐거워했을까?

입력 2017-12-21 17:25   수정 2017-12-22 07:08

자살의 사회학

마르치오 바르발리 지음 /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 604쪽 / 2만9800원



[ 마지혜 기자 ]
자살을 일컬어 누군가는 ‘마음의 병이 초래한 비극’이라 하고 어떤 이는 ‘사회적 살인’이라고 한다. 삶이 소중한 만큼 죽음은 엄중하기에 한 사람이 스스로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이유를 온전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학자들은 연구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대표적이다. 뒤르켐이 1897년 발표한 《자살론》은 자살 연구의 권위작이다. 그는 자살을 사회구조적 현상으로 파악했다.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정도라는 두 변수를 통해 자살을 네 유형으로 분류하고 사회 집단 간 자살률 차이를 설명했다. 사회 통합 정도가 낮아져 개인이 사회에서 소외되면 ‘이기적 자살’이 발생한다. 통합 정도가 너무 강해 개인이 집단에 매몰되면 ‘이타적 자살’이 늘어난다. 개인의 행위를 규제하는 사회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아노미적 자살’이 빈발한다. 규제와 규범이 지나치게 강하면 ‘숙명적 자살’이 증가한다.

뒤르켐의 이론대로라면 현대로 올수록 이타적 자살은 줄어야 한다. 사회에 대한 개인의 종속 정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끈이 느슨해졌으므로 이기적 자살이나 아노미적 자살은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현실은 달랐다. 20세기 마지막 40년간 이타적 자살은 되레 높아졌다. 1963년 베트남 승려 틱꽝득이 정부의 불교 탄압에 항의해 분신한 사건을 시작으로 인도 등에서 이런 일이 이어졌다. 자살특공 임무 형태를 띤 새로운 형태의 이타적 자살도 등장했다. 반면 서유럽에서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 꾸준히 줄었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마르치오 바르발리는 《자살의 사회학》에서 새로운 자살론을 내놨다. 최근 40년간 세계 각국에서 나타난 새로운 동향과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신경생리학 등에서 축적한 연구가 밝힌 새 흐름을 종합했다. 그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자살의 의미가 어떻게 변했는지, 동양과 서양에서 자살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등을 비교 연구했다.

우선 자살을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공격적 자살’과 ‘무기로서의 자살’로 새롭게 분류했다. 뒤르켐과 달리 사회적 원인보다 개인의 의도에 초점을 맞췄다.

이기적 자살은 질병, 파산 등으로 자신이 겪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기 삶을 포기하는 행위는 이타적 자살로 분류했다. 공격적 자살과 무기로서의 자살은 보복과 관련 있다. 자신의 죽음으로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건 공격적 자살, 자살테러범처럼 종교·정치적 이유로 하는 자살은 무기로서의 자살이다.

문화적 요인과 심리적·정신의학적 요인도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인도 풍습 ‘사티’를 예로 들며 자살을 이해하기 위해선 해당 국가의 문화와 사고방식, 사회 구성원이 공유한 감정 체계까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티는 남편이 죽은 뒤 부인이 남편의 시신을 화장하는 불에서 함께 죽는 풍습이다. 1980년대까지 만연했다.

강요에 의한 사티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자발적 선택이었다. 현장을 가까이서 본 학자들은 “너무도 즐겁고 적극적인 표정과 몸짓이어서 곧 죽을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지못해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지 말라. 그녀는 곧 천국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전했다. 저자는 이 자발성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도 문화에서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는 남은 생 내내 냉대를 받았다. 사회는 사티를 고결하고 정숙하며 충실한 아내의 본보기로 여겼다. 여성들은 과부로 사느니 사티를 택했다.

이 책은 학술서적으로, 자살과 관련해 특정 관점이나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근 유명 한류스타가 스스로 세상과 작별한 사건을 겪은 국내 독자들에게 자살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담은 이 책은 조금 남다르게 다가올 듯하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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