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2년 전 순환출자 해석 180도 바꿔… 정책 신뢰 '셀프 훼손'

입력 2017-12-21 17:37  

'삼성 순환출자' 판단 뒤집은 공정위

삼성물산 합병에 적용한 가이드라인 변경
확정되지 않은 이재용 부회장 1심 판결이 근거
순환출자 '강화'가 아니라 '신규 형성'으로 해석
법조계 "기업에 유리하게 해석해야 할 상황인데"



[ 임도원/좌동욱 기자 ]
“순환출자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은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법조문 자체가 추상적입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법 집행 가이드라인’ 변경과 관련해 언론브리핑을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 스스로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규정한 사안에 대해 공정위는 2년 전 유권해석을 180도 바꿨다. 공정위는 “해석 기준의 변경은 법률 소급적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정부 행정기관의 신뢰보호 원칙 위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판결과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삼성 측 로비를 근거로 삼았다는 점에서 해석기준 변경의 정당성 여부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물산·모직 합병은 신규 순환출자”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2015년 9월 합병하면서 ‘삼성SDI→옛 삼성물산→삼성전자→SDI’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는 ‘SDI→통합 삼성물산(옛 삼성물산+제일모직)→삼성전자→SDI’로 변경됐다. 대기업집단 신규 순환출자금지제도가 2014년 7월 시행된 이후 공정위가 기업 합병에 대해 관련 법규를 적용한 첫 사례였다.

공정위 실무진은 처음에는 ‘순환출자 고리 밖에 있던 제일모직이 존속법인인 만큼 신규 순환출자 형성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것을 받아들일 경우 SDI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공정위는 그러나 전원회의 논의 끝에 같은해 12월 제정한 가이드라인에서 ‘삼성물산 합병은 기존 순환출자 강화’라는 해석을 내놨다. “제일모직이 존속법인이든 소멸법인이든 합병법인의 경제적 실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SDI는 이듬해 보유 지분 가운데 옛 삼성물산 지분에 해당하는 지분 2.6%(500만 주)만 매각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에 예규를 바꿔 ‘기존 순환출자 강화’가 아니라 ‘신규 순환출자 형성’으로 봤다. 이에 따라 SDI는 나머지 2.1%(404만 주) 전량도 처분해야 한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존속법인이 어디든 합병법인의 경제적 실질이 같다는 의견도 충분히 타당하다”며 “기존 법률이 추상적이라면 해석은 최대한 적용 대상인 기업에 유리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판결 확정도 안 됐는데…

공정위는 가이드라인 변경의 주요 근거로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을 들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8월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따라 발생한 순환출자 변동에 대한 유권해석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이 작성된 경위와 그 적용에 대해 삼성의 청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김종중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이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에게 청탁해 실무진의 의견을 뒤집었다는 의혹을 그대로 받아들인 내용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판결문을 보면 알겠지만 ‘삼성의 청탁’이라고 하는 표현은 사실관계 부분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공정위가 판결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1심 재판부는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은 없었다’고 분명하게 판시하고 있다”며 “다만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인 현안과 관련해 확실한 증거 없이 ‘묵시적 청탁’만을 인정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공정위 담당 직원들은 2015년 12월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제정과 관련해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나 청와대 등 상급기관의 지시도 없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항소가 제기된 판결을 근거로 삼았다는 점도 논란이다. 김 위원장은 ‘판결이 바뀌면 예규도 바꿀 것이냐’는 질문에 “법원이 일부 판단을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공정위의 오늘 결정은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 순환출자 규정의 모호함에 대해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도원/좌동욱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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