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설립된 페튬(Petuum)이란 인공지능(AI) 벤처가 있다. 에릭 싱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 등이 세운 스타트업이다. 이 벤처에 일본 소프트뱅크와 투자펀드 어드밴테크가 9300만달러(약 1006억원)나 투자했다. AI 벤처치곤 상당한 투자금액이다.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이들의 독특한 관점이 있어서다. 이 회사는 AI를 특별한 기술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레고처럼 조립하고 해체하며 다시 재조립할 수 있는 블록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인공지능 사고방식도 레고식 사고의 연장이라는 게 싱 교수의 지론이다. 컴퓨터가 있고 클라우드만 알면 일반인도 AI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싱 교수는 이것을 ‘AI 제작 도구의 민주화’라고 표현한다.
블록체인 또한 레고식 사고의 연장으로 보는 학자도 많다. 블록과 블록을 연결하는 고리는 레고의 조립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레고식 사고는 구조적 사고요 입체적 사고를 말한다. 무한의 공간을 늘리고 채워가는 데서 흥미를 느끼는 사고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편집 능력이 중요하다. 이곳저곳에서 정보와 지식을 모아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레고식 사고에선 코드를 많이 생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코드를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많은 데이터를 모두 잘라 핵심만 취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식이 필요하다. 전문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기존 다른 분야에서 어떤 기술이 있는지, 어떻게 진화하는지 살펴야 한다.
일본 전자 및 자동차 기업이 최근 이런 레고식 사고를 중시하는 쪽으로 기술 개발의 방향을 바꿔가고 있다고 한다. 신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기능을 찾느니보다 오히려 기존 기술을 조립해 고객 수요에 대응하는 방향이다. 전자제품마다 부가기능을 그렇게 강조하던 게 일본 기업들이다. VCR(비디오카세트레코더)에 1만 개 이상 부품을 넣어 온갖 기능을 구현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 부품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일부에선 현재의 10%만으로도 자동차를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자율주행차, 로봇 등도 기능이 갈수록 줄어든다.
기존의 기술을 고객의 니즈와 연결시키는 그런 시대다. 빠른 머리 회전보다 유연한 사고가 우선되는 시대다. 정작 레고는 지난 9월 세계 종업원의 8%에 해당하는 1400명을 감축했다. 매출이 줄어서다. 매출이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크엘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레고 회장은 구조조정에 앞서 “그룹 전체에 리셋 버튼을 누르겠다”고 말했다. 레고다운 발상이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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