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활기찬 도시는 사람이 만든다

입력 2017-12-21 18:37  

재개발은 '철거 후 신축' 공간 정비에 치중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 생활에 초점 맞춰
지역 공동체 특성·활력 살리는 재생(再生)이어야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 >



건축가로 일하며 크고 작은 재개발 사업에 참여해왔으나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가 깃든 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데에는 늘 큰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 때로는 일부러 시간을 내 옛 동네 단골집들을 찾아가긴 하지만 신축 빌딩 식당가로 옮긴 자리에서 나누는 한 잔 술에서는 뭔지 모를 어색함과 허전함을 맛보게 된다. 이런 마음을 단지 배부른 추억 타령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발을 통해 얻게 되는 공간의 편리함과 사업수익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오랜 세월 겹겹이 쌓여온 역사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정책 전면에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간적 수요 창출의 효율성이 우선이었던 고층 빌딩과 아파트의 시대를 지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공동체를 만드는 노력이 시급한 우리의 도시 현실 앞에 도시재생은 더욱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접근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개발재건축의 ‘철거 후 신축’ 공식이 갖는 명확성에 비해 도시재생은 아직 많은 이에게 생소하고 모호한 용어인 것이 사실이다. 도시정책 패러다임의 변화가 정권 교체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탓인지 도시재생이 과거의 재개발, 재정비 사업 등을 대체하는 개념인 것처럼 알려진 면도 없지 않다. 도시재생은 급격한 성장의 기세가 꺾인 뒤 쇠퇴하는 도시, 특히 구도심 공간을 다시 살리자는 개념이기 때문에 재개발이나 재정비 같은 수단적 개념과 상호 배제의 관계는 아닌데도 말이다. 재개발이나 재정비도 해당 지역에 필요한 것이라면 도시재생의 효과적인, 심지어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고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이라는 생각은 엄밀히 따지자면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도시재생이란 재개발, 재정비 등의 개념과는 어떻게 다른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도시를 보는 관점에 있다. 건물과 도로, 인프라 시설 등의 건조 환경은 흔히 도시정책의 전부로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은 도시의 하드웨어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리 멋진 건물과 최고의 인프라가 있다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면 제대로 된 도시라 할 수 없으니, 도시 공동체의 요체는 결국 한곳에 모여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 재개발이나 재정비 사업이 다분히 하드웨어 중심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건물을 짓고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도시재생이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환경과 사람을 함께 생각하는 시야의 확장인 셈이다.

물론 어떤 지역이 지닌 특성과 기능을 잘 살려서 도시 전체의 운영 또는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주거지역, 상업지역 등으로 도시를 나누는 도시계획상의 구분이나 디지털 단지, 특화지역 등의 정책 사업은 자칫 도시공간을 기능적 단위로만 인식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특화산업 발전을 위한 봉제거리라고 어디 재봉틀만 돌아가겠는가. 어디든 사람이 살고 일하고 쉬는 공간이라면 그들의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존중하고 지원해야 지역이 갖는 기능 또한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추진한다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니 정작 인근에 살던 평생 단골들은 관광객만 보고 장사하는 가게에서 필요한 것을 찾지 못해, 또는 전에 없던 복닥거림에 질려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통시장이 있는 지역에 관광산업의 기능을 넣는 데 몰입하다 보니 그 동네에 사는 이들의 공동체는 뒷전으로 밀린 탓이다. 지역주민에게 외면받는 전통시장의 부흥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도시재생 정책에 거는 기대에는 이처럼 ‘공동체의 재발견’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다. ‘재생’의 대상이 건조 환경에서 도시공동체로 확장돼 지금까지의 도시정책이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사람, 그리고 사람들의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챙기기를 바라는 것이다. 쇠퇴한 도시공간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라면 무엇보다도 도시의 생명력을 만드는 주체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활기찬 도시는 사람이 만든다.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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