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혜 기자 ] 사랑은 많은 예술 작품의 화두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시작돼 마침내 삶 전체를 집어삼키는 강렬함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치열하고 집요하게 파고든 연극 두 편이 나란히 연말 무대에 올랐다. 두 남자의 치명적이고 슬픈 사랑을 다룬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엇갈린 평생의 사랑을 그리는 연극 ‘발렌타인 데이’다.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내년 2월25일까지 공연하는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마누엘 푸익이 1976년 발표한 소설이 원작이다. 고혹적인 분위기를 띠면서도 성, 정치 등 민감한 주제를 폭넓게 넘나든다. 공상집단 뚱딴지의 문삼화 대표가 번역과 연출을 맡아 무대화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반정부 활동을 하다 수감된 정치범 ‘발렌틴’과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동성애자 ‘몰리나’의 이야기다. 몰리나는 발렌틴에게서 지하 반정부 조직 정보를 캐내면 가석방해주겠다는 감옥 소장의 제안을 받는다. 그는 잦은 고문을 받아 심신이 약해진 발렌틴에게 매일 영화 얘기를 들려주며 다가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정말 사랑에 빠진다.
발렌틴은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반면 몰리나는 낭만적이고 현실 도피적이다. 처음에 몰리나를 적대시하던 발렌틴은 차차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두 사람은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받아들인다.
두 배우가 이끌어가는 2인극이다. 영화 이야기를 매개로 서로를 알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몰입도가 높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난 그저 너였던 것 같아”(몰리나)나 “네 생각만 하니까. 네가 날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니까”(발렌틴) 등으로 정제된 대사는 동성애냐 이성애냐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존재 간의 인간애’를 무대에 남긴다.
23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를 장식할 ‘발렌타인 데이’는 러시아의 현대 극작가 이반 비리파예프의 작품이다. 러시아 최고 권위의 연극상인 황금마스크상을 받은 연극인이다. 그가 2009년 쓴 대표작 ‘발렌타인 데이’가 예술의전당의 기획 아래 한국에서는 처음 공연된다. 김종원이 번역하고 연출했다.
노년에 한 집에서 생활하는 두 여인이 과거 동시에 사랑하던 한 남자에 관해 풀어내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물들의 10대부터 60대까지를 훑으며 어린 날의 뜨거운 사랑, 엇갈린 사랑의 고통, 우연의 야속함, 세월이 흘러 모든 걸 추억으로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단단함 등을 전한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속을 넘나들어 시적이고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열여덟 살에 서로 첫사랑을 나누는 ‘발렌타인’과 ‘발렌틴’역을 정재은과 이명행이 연기하고, ‘발렌틴’을 짝사랑하다 그와의 결혼에 성공하는 ‘까쟈’를 이봉련이 맡는다. 배우 최아령이 코러스로 출연한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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