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87' 김윤석,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함

입력 2017-12-22 07:20  

장준환 감독 새 영화 '1987' 박 처장 역 김윤석
"박 처장은 개인의 악역 아닌 시대의 악역"
"1987년, 데모 한 번 안해본 대학생 없어…나의 20대 고스란히 담겨"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혜안 가지고 잘 살아야"




6.10 민주항쟁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한 해가 넘어가는 시점에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듯 영화 '1987'이 오는 27일 개봉을 한다. 연출을 맡은 장준환 감독은 우스갯소리로 '울보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어떤 이들은 고작 상업영화 한편에 감정을 쏟아내냐고 말하지만 배우 김윤석은 알고 있다. 초고 때부터 완성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을 올인하고, 정성스럽게 빚어낸 이 영화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1987'은 서울대 대학생이 남영동에서 취조를 받다 사망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영화는 박 열사의 사건부터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 사건, 6.10 민주항쟁을 시간순으로 엮어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공개되고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족적을 제대로 다룬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김윤석은 올해있었던 '촛불 혁명'과 1987년의 시간이 많은 지점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촛불이 광장에 타오를 때쯤, 우리는 이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되게 닮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사실 장미 대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영화의 퀄리티만 높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말로만 떠돌던 이명박 정부의 영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장준환 감독과 아내 문소리는 동시에 이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던 터다. 김윤석은 이에 대해 "실감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가지고 컴플레인이 들어온다면 약간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라며 "유가족들이 살아 있고, 그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살아 있다. 그래서 마음속의 부담은 영화의 완성도가 제일 컸다"라고 털어놨다.


영화는 대공수사처 박 처장(김윤석)이라는 안타고니스트(악당)를 중심에 두고 검사, 기자, 교도관, 대학생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포진해 릴레이처럼 역사의 물줄기를 표현했다. '1987'에서 의도하지 않게 악역을 맡게 된 김윤석은 더욱 강력한 박 처장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시나리오 구조가 참 재밌습니다. 다양한 캐릭터가 모여 결국 6월 항쟁을 만들어가죠. 작은 계란 들이 하나, 둘씩 붙어서 꿈쩍도 안할 것 같은 무너뜨리는 과정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제가 더욱 악할수록 희망은 더 빛나고, 그들이 더욱 돋보일 거라는 생각에 악해지기 위해 노력했죠. 이한열 열사 곁에서 그 일을 겪었던 배우 우현도 그런 의미에서 악역을 도맡았습니다."

아무도 모를 수 있었던 사건이 누군가의 우연과 누군가의 실수로 알려지고 막으려 하면 할 수록 알게 되는 부분이 드라마틱하다고 김윤석은 설명했다.

정부가 박종철 열사 사망사건을 숨기기 위해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시대의 아이러니와 같은 부분"이라며 "30년 떨어져 관조해보면 그 시대엔 가능했을 수 있어도 지금 세상이었다면 난리 났을 것"이라며 스스로 하면서도 기가 차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처장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제작진이 취재해 모아 준 당시 정보들을 접하고 실존 인물인 그를 연기하기 위해 애썼다.

"권력의 유지 외에는 어떤 것도 없는 인물입니다.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박 처장은 권력의 도구로 쓰이다 버려지고, 사냥개는 결국 사냥개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타짜'나 '황해'와 다르게 개인적으로 창조하는 캐릭터가 아니죠. 권력욕을 상징할 수 있게 머리도 M자로 드러내고 마우스피스도 착용하고 거구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온 몸에 패드도 넣고 그랬죠."


김윤석이 기억하는 1987년에 대해 묻자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선 "당시 대학생 치고 데모 한 번 안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연극부였는데 운동권 출신 학생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대자보를 붙일 때 손이 모자라면 같이 써주고, 시대적인 그림들을 담은 마당극, 정치 풍자극도 많이 하던 시대였습니다. 나의 이십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합니다."

김윤석은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1987'이 유독 길게 여운으로 남을 거라고 했다. 영화적 완성도에 대서도 자신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입니다. 박종철 열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 사건이 연결되면서 민주 항쟁에 이르기까지. 후대에 자신있게 현대사에 대해선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아빠도 동참을 했다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판 레미제라블"이라면서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말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시대를 지나 어른이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삐딱한 눈으로 잘 살아야 겠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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