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만명 목숨 끊는다는데…
국민 4명중 1명 정신질환 경험
우울증 등 치료는 15% 불과
상담사도 '트라우마' 시달려
1개 자치구에 상담사 4명뿐
'상담의 질' 높이기엔 역부족
사람 목숨은 사람만이 살린다
경찰, 대응 매뉴얼 있으나마나
맞춤지원으로 극단적 선택 막아야
[ 구은서/신연수/이설 기자 ]
“유서를 읽고 나니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기 망설여진다.”
지난 18일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본명 김종현·27)이 쓴 유서가 공개되자 인터넷에는 ‘정신과 치료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종현은 유서에서 “(의사가) 조근조근 한 목소리로 내 성격을 탓할 때 의사 참 쉽다 생각했다”며 “왜 아픈지를 찾으라 했다. 전부 내 탓이고 내가 못나서야. 선생님 이 말이 듣고 싶었나요”라고 했다. 이 때문에 종현이 받았던 치료가 부적절했던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김현철 씨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그 주치의를 동료로 인정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유서 내용만으로 진료상황을 추측하고 의사의 치료가 부적절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면서도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편견과 불신을 뼈아프게 실감했다”고 했다.
“편견·경제적 부담이 치료 문턱 높여”
정신질환은 ‘마음의 감기’로 불린다. 감기처럼 흔히 겪을 수 있고, 조기 치료 여부에 따라 완치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시행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감기를 방치하면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듯이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지난해 자살 사망자 ‘심리부검’을 한 결과, 88.4%가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중에서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은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상담소나 병원 문을 두드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복지부의 ‘2016 정신건강 종합대책’에 따르면 국내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이들이 최초 치료를 받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61년(84주)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1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선택을 하고 있다”며 “내년 자살예방과를 신설해 관련 대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치료를 지연시켜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홍창형 중앙자살예방센터장 겸 아주대병원 교수는 “안전띠,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전환이 교통사고 사망률을 크게 낮추지 않았느냐”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해소돼야 병원을 찾으려는 환자들의 주저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환자는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기도 한다. 취업준비가 길어지면서 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A씨는 “병원은 진단과 처방 위주라서 결국 별도로 심리상담소를 찾아야 했다”며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한 시간에 10만원대인 상담료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현실적으로 현재의 건강보험 의료수가로는 영화와 드라마 속 의사들처럼 긴 시간을 들여 환자를 상담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의료 공백을 해소하고자 전국 시·군·구마다 한 곳씩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등을 두고 무료상담을 제공한다. 하지만 “상담의 질을 담보할 수 없는 열악한 여건”이라는 게 현장 상담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 중인 상담사 B씨는 2년 전 목요일을 잊지 못한다. 자살고위험군 응급출동이 한꺼번에 몰려 자살 시도자를 사흘 동안 한 명씩 만나 상담하기로 했다. 금요일에 만나기로 한 환자가 목요일에 재차 자살을 시도했다. B씨는 “구 전체 자살 예방과 상담활동을 상담사 네 명이 맡고 있다”며 “그날 이후 ‘내 건강과 생활을 포기하면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떨쳐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상담 실적 경쟁까지 만만치 않다. 자살 응급출동을 몇 번 했는지, 상담 건수는 몇 건인지 등의 실적을 보고해야 한다. B씨는 “인력도 부족한데 실적까지 늘려야 하니 상담의 질을 높이기 힘들다”고 했다.
본인이 상담하던 환자가 전날 자살했어도 다음날 똑같이 출근해야 하는 등 상담사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는 의견도 있다. 자살시도자를 응대하는 자살예방사업 실무자 1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실무자들이 자살하고 싶다고 대답한 비율이 21.8%로 일반인(5.2%)보다 네 배나 더 높았다. 홍 센터장은 “일본은 개정된 자살예방법 조항에 ‘인재를 확보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며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종합 예방정책 마련해야”
종현의 사례에서 보듯 자살 의심 신고를 최초로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하는 건 대부분 경찰이다. 그럼에도 경찰청의 관련 사건 대응 매뉴얼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대응도 제각각이다. 서울의 한 파출소에 근무 중인 C경위는 “자살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해 구조 대상자를 진정시킨 뒤 자살예방센터 등에 연락해 상담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다”고 했다. 이에 비해 옆 파출소에 근무 중인 D경위는 “28년 근무하는 동안 자살 의심 신고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따로 절차가 마련돼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자살 관련 신고는 대부분 밤에 들어올 텐데 그때도 상담을 받아주는 곳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자살시도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단법인 ‘희망을만드는사람들’은 지난 10월 5억원의 빚을 지고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시도한 중년 남성이 병원 응급실에 실려오자 전화 상담으로 해당 추심은 불법이라는 사실과 대응 방안 등을 안내해 추가 자살 시도를 막기도 했다. 김희철 희망을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실업 등 사회 구조적인 요인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린 이들의 자살은 사실상 ‘사회적 타살’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구은서/신연수/이설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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