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비정규직 끝내 외면한 현대차 노조원

입력 2017-12-24 18:37  

임·단협 50.2% 반대로 부결, 사상 처음으로 해 넘길 듯

"노동귀족 탈피" 설득에도…
집행부, 임금 인상 자제하고 사내하청 정규직 채용 수용
"임금 삭감 받아들일 수 없다"… 강성파 선동에 조합원 흔들려



[ 강현우 기자 ]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노조 집행부와 회사가 도출한 올해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집행부는 경영 위기 극복과 비정규직 축소를 위해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서 사내하청 근로자의 정규직 특별채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수용했다. 그러나 현장 조합원들의 결론은 “당장 내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임금 얼마나 줄길래

24일 현대차 노조에 따르면 지난 22일 전체 조합원 5만890명을 대상으로 한 임·단협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서 투표자 4만5008명 가운데 2만2611명(50.2%)이 반대표를 던져 잠정합의안이 부결됐다. 찬성은 2만1707명(48.2%)이었다. 노조 관계자는 “임금이 작년보다 줄어드는 데 대해 반대하는 근로자들이 많아 부결됐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19일 39차 교섭에서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임금 부문은 기본급 5만8000원 인상, 일시금(성과급·격려금 등)으로 통상임금의 300%+280만원, 제휴 사업장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복지포인트 20만포인트 등이었다.

합의대로 결정되면 올해 평균 연봉은 지난해(9400만원)보다 200만~300만원 내려갈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보다 기본급은 오르지만 전체 연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일시금 규모가 줄기 때문이다. 지난해 합의는 기본급 7만2000원 인상, 일시금 350%+330만원, 전통시장상품권 50만원, 주식 10주 지급이었다.

현대차 노조 집행부가 사실상의 임금 삭감에 합의한 것은 회사 경영 악화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연간 판매량은 2015년 496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485만 대로 줄었다. 올해 11월까지 판매량은 409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6.1% 감소했다.

재무 실적 부진은 더 심각하다. 현대차의 순이익은 2012년 9조611억원에서 지난해 5조7197억원으로 4년 만에 36.9% 줄었다. 올해는 4조원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 노사는 잠정합의안에 2021년까지 사내하청 근로자 3500명 추가 특별채용, 현재 2000여 명인 단기 계약직을 2019년 절반으로 줄이기 등을 넣었다.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에게 “‘노동 귀족’이라는 비난을 덜기 위해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고민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결과는 부결이었다.

◆작년에도 한 차례 부결

현대차 노조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파업을 벌였다. 그러면서도 평균 연봉은 2014년 9700만원에서 2015년 9600만원, 지난해 9400만원으로 내려갔다. 매년 ‘귀족노조가 또 파업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실속은 없었다는 평가다.

현대차 노조 조합원들은 지난해 8월에도 임금 삭감에 반대하며 1차 잠정합의를 부결시켰다. 이후 50일간 10차례 파업을 벌인 다음 기본급 4000원, 상품권 30만원을 더 받는 수준에서 타결시켰다. 당시 “결과적으로 기본급 4000원 더 받으려고 파업을 한 것이냐”는 비판이 회사 안팎에서 쏟아졌다.

노동 활동가들의 ‘계파 싸움’ 때문에 집행부가 임금 삭감을 받아들인 명분이 현장에 먹혀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노조 집행부는 하부영 위원장이 속한 들불과 민투위 등 두 계파가 연합하고 있다. 다른 계파들이 투표를 앞두고 “현 집행부가 조합원의 이익을 저버리고 있다”는 식의 선전을 해 상당수 조합원이 흔들렸다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라인별로 ‘지역구’를 담당하는 400여 명의 대의원이 현장 정서를 좌지우지하는 상황도 전체 조합원의 단결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조합원들이 부결을 선택하면서 현대차의 올해 임·단협 타결은 내년 2월 이후로 넘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는 기한이 촉박하고, 1월에는 노조 내부의 총선 격인 대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임·단협이 해를 넘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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