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붙이기 행정에 '부글부글'
겨울철 스모그 잡기 위해 석탄에서 가스난방 교체했지만
비축량 부족에 가격 급등까지… 병원도 환자 치료 제대로 못해
베이징선 간판교체에 민원 폭주
도시 스카이라인 정비사업 중단
환경오염 해결 앞세우지만
28개 도시 중 24곳, 올해 대기질 개선 목표달성 실패
[ 강동균 기자 ] 지난 5일 중국 허베이성 바오딩시 취양현에 있는 한 초등학교. 어린 학생들이 책상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와 수업받고 있었다. 햇볕을 쬐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스모그를 잡겠다며 석탄 난방을 가스 난방으로 바꾸도록 했지만 아직 가스 난방 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빚어진 사태였다. 한 학부모는 “겨울철 난방이 시작된 지 20일 가까이 지났는데 학교에선 난방이 나오지 않는다. 교실 안은 난방이 되지 않으니 응달에 있는 교실은 바깥보다 춥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중국 정부가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추진해온 각종 정책이 역풍을 맞고 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단속에만 집중한 탓에 애꿎은 서민만 피해를 입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중국 정부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정책을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남부 지역까지 확산되는 난방 대란
중국 북부 지역에선 매년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당국의 허가 아래 난방이 이뤄진다. 그동안 난방의 공급 원료로는 대부분 석탄이 사용됐다. 중국 정부는 악명 높은 스모그를 없애기 위해 대기오염방지행동계획(2013~2017년)을 세우고 석탄 대신 천연가스 난방으로 바꾸는 ‘탄가이치(炭改汽)’ 정책을 시행했다. 올해는 이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다.
북부 지역 28개 도시는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석탄 보일러를 대대적으로 철거하고 이를 가스 보일러로 교체하는 작업을 강제로 추진했다. 하지만 가스 파이프라인을 확충하거나 가스 비축량을 늘리는 등의 대비책은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선 가스 공급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석탄 보일러를 모두 철거해 버렸다.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달 중국의 천연가스 수입량은 작년 같은 달보다 53% 증가했다. 천연가스 가격은 이달 초 불과 보름 만에 t당 3000위안(약 49만원)에서 7000위안으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가스 대란은 허베이·산시·허난·산둥성과 네이멍구자치구 등 북부 지역을 강타했다. 가스 공급이 제한돼 1000만 가구가 냉골 속에 밤을 지새우고, 대형 병원이 입원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환경부는 최근 28개 도시에 “탄가이치를 아직 끝내지 못한 지역은 석탄 난방으로 대체해도 된다”는 긴급 공문을 보냈다.
인터넷에선 뒤늦은 탁상행정이라며 비난이 들끓었다. 일부 네티즌은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정부) 다 해 먹어라” “밖에 눈이 내리니 이제야 (석탄을 때라고) 얘기하는구나”라며 정부의 늑장 대처와 모순된 정책을 비판했다.
가스 공급 부족으로 인한 난방 대란은 저장·장쑤·후베이성 등 남부 지역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후난성 창사시는 지난 19일부터 정부 및 공공기관 건물에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가스 공급 부족이 시작된 지난달 하순 이후 이 지역의 가스를 북부 지역으로 송출한 때문이다.
시민 분노에 베이징시 간판 철거 중단
수도 베이징시는 지난달 거리 환경을 정비하고 도시 스카이라인을 개선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간판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건물 옥상에 걸린 광고 게시판을 모두 철거하고 3층 이상 높이에 건물 이름의 간판 하나만 허용했다. 간판 철거가 통보된 지 열흘 만에 1만4000개의 간판이 사라졌다.
베이징시는 올해 말까지 2만7000개를 철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밀어붙이기식으로 간판 철거를 진행하면서 시민들 원성이 높아졌다. 간판이 모두 없어졌는데도 새 간판은 설치되지 않아 시민들이 특정 장소를 찾아갈 때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이 와중에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쓴 중국인민해방군총의원(301병원) 간판은 건드리지 않아 “시민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직 지도자만 신경 쓴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결국 베이징시 도시관리위원회는 최근 간판 철거를 잠정 중단하라는 긴급 공문을 발송했다. 겨울철 추위와 바람 때문에 간판 철거 작업이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시민들 분노에 한발 물러선 것이다. 난방 대란 때와 똑같은 형태의 정책 혼선을 빚은 셈이다.
한 네티즌은 “정부가 큰 칼을 들고 석탄 난로 폐기와 간판 철거 등을 숨돌릴 틈 없이 밀어붙이다가 급히 정책을 바꾼다고 하니 도대체 머리가 있는 것이냐”고 분노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정부를 비판하며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는 당태종을 성군으로 만든 위징이 백성을 주인으로 삼으라며 한 말이다. 민의가 없으면 환경 개선도, 아름다운 스카이라인도 의미 없다는 뜻이다.
극약 처방에도 개선되지 않는 대기질
정부가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환경오염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중국 대도시 환경과 대기질은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 환경보호부는 매년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기승을 부리는 스모그가 올해는 평년보다 이른 시기에 중국 대륙을 뒤덮을 것으로 예상해 긴급 대책을 마련했다. 내년 3월까지 중국 내 28개 도시의 초미세먼지(PM 2.5, 지름 2.5㎛ 이하) 평균 농도를 전년 대비 15% 이상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해당 지역 당서기를 문책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환경보호부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8개 도시 중 24개 도시가 10월까지 대기질 개선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28개 도시의 PM 2.5 평균치는 61㎛/㎥로 중국 공식 기준 35㎛/㎥,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인 10㎛/㎥보다 훨씬 높았다. 11개 도시에서 전달보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증가했다.
중국 인구의 8%를 차지하는 베이징, 톈진, 허베이 등 수도권은 올해 1~11월 스모그가 없는 날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7% 줄었다. 베이징의 경우 PM 2.5 수치가 작년 동기 대비 13.4% 감소했지만 기후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환경 전문가는 “올해 시베리아 공기의 움직임이 활발해 베이징과 중국 북부 지역 오염물질을 흩어지게 한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열린 중앙경제정책회의에서 향후 3년간 추진할 핵심 경제정책으로 환경오염 해결을 정했다. 전문가들은 “환경을 중시하면 아무래도 성장률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불만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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