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1300년대) 중반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은 무역을 통해 유럽에 유입되고 확산됐다고 한다. 동방과의 교역 중심지인 이탈리아 제노바에 갔던 무역 상인들이 그곳에 주둔해 있던 몽골 병사들과 접촉하면서 처음 병을 얻었다. 이들이 무역을 위해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흑사병도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입항 선박을 40일간 격리하고 흑사병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입항을 허가했다. 검역이란 뜻의 영어 단어 ‘쿼런틴(quarantine)’이 바로 이 ‘40일간’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콰란타(quaranta)’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산업혁명 시절에는 기계류 사용이 증가하면서 윤활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라 당시 윤활유로 쓰이던 향유고래 기름 수요도 폭증하면서 향유고래가 멸종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19세기(18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석유가 본격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지구상에서 향유고래는 멸종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석유의 대량 생산으로 인류는 큰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석유 소비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기후변화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무역과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눈부신 발전 뒤에는 어두운 부분이 함께하는 경향이 많다.
무역은 전 세계적으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촉진해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해 왔다. 다만 국가별로는 처한 상황에 따라 무역의 공과(功過)가 다르게 평가되곤 한다. 미국은 자유무역이 자국 일자리를 빼앗는 주범이라고 비난하며 보호무역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산업 경쟁력이 약한 후진국은 자유무역에 의해 자국 산업을 육성할 기회를 놓쳐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한국은 수출을 통해 유례없는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뤘다. 특히 올해는 수출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무역 규모도 3년 만에 다시 1조달러를 회복하는 등 수출이 경제성장의 주춧돌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출로 인한 혜택을 대기업과 일부 계층만 누림으로써 경제 불균형을 악화시키고 양극화를 가져온다는 비난도 같이 받고 있다. 올해 최고의 수출 실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청년 실업률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해 주는 근거로 인용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수 규모가 작은 우리 경제에서 수출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되 그 이득을 골고루 누리는 지혜로운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
김정관 <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jkkim8798@kita.net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