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기부 숨긴 채 떠난 '강골 검사'

입력 2017-12-26 20:59   수정 2017-12-27 05:09

서울대, 변무관 전 대구지검장 기부사실 사후 공개

강직한 성품… 어려운 후배 챙겨
검소한 생활로 모은 장학금 기부
"이름 밝히는 건 추접스러운 일"

기부문화 확산위해 2년 만에 밝혀



[ 황정환/배태웅 기자 ]
2015년 9월 한 노인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서울대에 30억원을 기부했다. 개인으로는 손에 꼽을 만한 거액 기부에 학교 측이 이름을 딴 장학금이라도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선행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 어떠냐는 자식들의 제안도 “그런 추저운(추접스러운) 일 하지 말라”며 물리쳤다.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변무관 검사(오른쪽)의 이야기다.

서울대는 아름다운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유족의 동의를 받아 2년여 만에 그의 선행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1922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주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52년 제3회 고등고시 시험에 합격하며 검사의 길을 걸었다. 강직한 성품 때문에 그는 상부에 밉보이는 일이 많았다. 자유당 정권 시절인 1954년 그는 초임지인 안동에서 자유당 안동지부장을 사기횡령으로 구속시켰다. 1980년 대구지검장 시절엔 한 투자회사 비리와 연루된 보안사 간부를 수사해 반체제 인사로 몰리기도 했다. 그는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을 전전하다 1981년 대검찰청 총무부장을 끝으로 3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퇴직 후 변호사 사무실을 차린 그는 어려운 후배를 위해서라면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그의 사무실에서 일한 시보 70여 명을 가정사까지 챙겨 가며 도왔다. 이재식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정종섭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박정훈 서울대 법대 교수 등이 그의 도움을 받아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70명 시보의 모임은 그의 호를 딴 ‘정석회’로 이어지고 있다.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자 그는 서울대에 3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속옷을 꿰매 입고, 손님이 와도 반찬을 서너 가지만 내올 정도로 검소하게 지내며 모은 돈이었다. 변 검사의 차남 변종인 씨는 “아버지는 평소 ‘돈과 지식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며 “인생이 그랬듯 기부도 우직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왼쪽)은 “변 검사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거목으로 우리 사회 법질서 확립과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헌신하며 많은 후배를 양성했다”며 “기부받은 ‘변무관 선한 인재 장학금’은 소중히 활용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황정환/배태웅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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