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구석기人처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착각'

입력 2017-12-28 19:28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

마를린 주크 지음 / 김홍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464쪽│1만8000원



[ 마지혜 기자 ] 비만과 당뇨, 동맥경화, 류머티즘성 관절염 등은 ‘문명병’으로 불린다. 정신적으로 고된, 장시간 노동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보다 단순한 삶이 가능했던 과거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구석기 식단’ 유행이 일었다. 육류와 채소 중심의 식사를 강조하고 농업혁명의 산물인 곡물과 유제품을 배척하는 게 특징이다. ‘농경은 진화의 역사에 비춰볼 때 아주 짧은 시간인 1만 년 전에야 시작됐다. 인간은 변화한 환경에 맞춰 진화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해 현대의 식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인 마를린 주크는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에서 “구석기 시대 추종은 과거를 미화하는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런 주장을 정면 비판한다. 저자는 식생활은 물론 성생활, 운동, 육아 방식, 부모와 자식 관계, 질병과 건강 등 인간의 삶을 이루는 모든 영역을 아울러 우리 조상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 인간은 어떻게 진화해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를 추적했다.

저자는 “‘구석기 환상’은 진화에 대한 착각에서 비롯됐다”며 진화가 수십만 년에 걸쳐 아주 더디게 진행된다는 가설부터 깬다. 먹이와 숨을 장소를 두고 경쟁하던 아놀도마뱀은 10여 세대만에 몸통 모양과 뒷다리 길이를 바꿨다. 인간은 짧은 시간 안에 높은 고도에 살 수 있는 능력을 얻었고 말라리아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 저자는 “진화는 빠르게도, 느리게도, 그 중간 속도로도 진행된다”며 “농경이 시작된 이후 1만 년은 인간이 그에 맞춰 진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농경 생활에 대한 논쟁을 통해 ‘진화는 곧 진보’라는 생각도 뒤엎는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1987년 “농경 이후 성적 불평등이 나타났으며 질병이 만연하고 전제정치가 판을 치게 됐다”며 “농경의 시작은 인간 종족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농경인의 노동 시간과 강도가 수렵 채집인에 비해 과하다는 것도 자주 지적된다. 하지만 농경은 음식물 부족 문제를 완화해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인간 집단 규모가 커지면서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지고 문명이 꽃폈다. 저자는 “진화가 진보와 동일하다는 생각은 틀렸다”며 “진화는 계속되지만 거기에 목적이나 방향성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거를 다음처럼 이해한다. “역사를 통해 삶이란 역겹고 잔인했다. 짧은 단계가 언제든 있었기에 한 시대를 미화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과거를 우리의 현재를 배척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는 그의 제언은 막연히 과거 어느 때를 그리워하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린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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