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체계는 곱셈법칙과 같아
곱셈하다 '0'하나 있으면 전체가 '0'… 규제 하나 있으면 전체 규제 살아있는 것
한국서 안되는 규제 전수조사해 없애야
최저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 등 기업 현실 반영해 완급 조절해야
바뀐 환경 적응하려면 시간 필요… 문재인정부의 '기업 홀대론' 은 오해
[ 좌동욱 기자 ] “규제를 줄여야 할 판에 700개 가까운 규제법안을 발의하다니…,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 아니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이 걸핏하면 기업을 옥죄는 규제법안을 발의하는 국회에 이같이 직격탄을 날렸다. “새해엔 중국에서는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선 규제 때문에 불가능한 사업 모델을 전수조사해 규제를 없애자”는 제안도 했다. 경제계 최대 현안인 근로시간 단축 등 주요 노동정책에 대해선 기업 규모와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해줄 것을 주문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22일 출입기자단과 한 공동 신년인터뷰에서 경제계의 여러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규제개혁 목소리는 갈수록 시들어가는 반면 (앞서가는) 세계 시장을 내다보면 눈앞이 깜깜하다” “국회를 보면 황야에서 혼자 소리치는 기분”이라는 등 3년4개월여간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느낀 안타까움과 무력감, 답답한 심경을 여과 없이 내비쳤다.
그는 규제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이야기하겠다”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가능한 일이 한국에서 불가능하다면 옳은 일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새로 성장하는 신산업과 중대한 변화가 이뤄지는 산업 등에서 중국보다 한국 시장의 규제가 더 많다고 꼬집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은 “4차 산업 영역에선 중국이 한국을 패싱해(지나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든다”고 걱정했다.
박 회장은 규제 체계를 ‘곱셈’으로 비유했다. 그는 “1 곱하기 2 곱하기 3 곱하기 등으로 곱셈하다가 영(0)이 하나 있으면 전체가 영”이라며 “복합규제 속에서 규제 하나만 살아 있어도 전체 규제가 다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규제를 줄였다고 하지만 규제받는 기업으로선 전혀 줄어들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중국에선 가능한데 한국에선 불가능한 규제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다 없애버리자는 파격적인 생각을 하면 상당 부분 (규제가) 바뀌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규제 체계를 “허락한 것만 하게 하는 포지티브 입법 체계를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네거티브 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현안과 관련해선 “문제점에 대해 인식을 공유한다”면서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하되 줄어든 노동 시간에 비례해 급여도 줄이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이 4% 정도인데 최저임금이 올해 16.4% 올라가면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영세하면 영세할수록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산정 기준이 되는 기본급 범위에 상여금과 숙식비 등 고정적 급여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바뀐 환경에 맞춰 체질을 바꾸고 (경영) 방식을 바꿔 적응하려면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꺼번에 기업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기업 애로를 반영해 여러 현안을 전향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박 회장은 “규제든 노동문제든 결국 국회에서 입법으로 처리해야 할 안이어서 지난해 발이 아플 정도로 국회를 다녔다”며 “하지만 기업 호소에 (국회가) 반응한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허망하다. 황야에서 혼자 소리치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 1000여 건 중 규제법안이 690여 건”이라며 “지금도 규제가 많다고 하는데 700건 가까이 보태야 할 규제가 과연 무엇이냐, 진짜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또 사회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산업을 키우기 위해 규제를 완화할 때 반대하는 사람은 대개 기득권이 있는 사람”이라며 “이럴 때는 모든 사람을 다 행복하게 하기보다 기회를 자꾸 마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규제 업무를 담당하는 관료 조직에 대해선 “규제를 바꾸면 항상 피해자와 수혜자가 나오게 마련”이라며 “피해자의 항의나 수혜자에 대한 의심으로 공무원이 조사받고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당하면 그 누구도 규제를 바꾸는 데 앞장서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 불참하는 등 이유로 기업을 홀대한다는 지적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박 회장은 “어느 정부든 2년차에 들어가면 성적표로 검증받지 않을 방법이 없는데 그 성적표는 결국 경제 성적”이라며 “성적표를 내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기업 실적이다. 아마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이 기업일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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