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요건 까다로워 기준 초과
잔업 줄여봤자 혜택 못받아
원자재도 덩달아 올라 '이중고'
거창한 포부는 온데간데 없고
한해 버틸 걱정에 한숨만 더해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 김낙훈 기자 ] 수도권의 주물업체 K사장은 올해 경영 목표를 “일단 살아남자”로 정했다. 매년 공격경영을 부르짖던 그가 이렇게 소박하게 바뀐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일자리안정자금을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종업원이 20여 명이어서 외견상 지원 대상(노동자 30인 미만 고용 사업주)에는 해당한다. 하지만 조건이 ‘월보수액 190만원 미만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로 한정돼 있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회사는 잔업이 많아 외국인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월보수액이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새해 들어 잔업을 줄여도 소용없다. 2018년 1월1일부터 8월 말까지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하면 ‘2016년 임금지급 자료’와 비교하게 되는데 그때보다 보수총액이 줄면 지원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기 때문이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그대로 흡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원·부자재 업체들은 가격을 올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거래업체로부터 연삭숫돌 가격을 1월1일자로 13% 인상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거기엔 “최저임금 인상 등 제조경비 상승 요인으로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돼 인상하니 양해해달라”는 설명이 담겨 있었다. 주물제품 수출가격을 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선 중국 일본 등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건자재업체 S사도 일자리안정자금 수혜 혜택에서 제외돼 있다. 근로자가 30명이 넘어서다. S사장은 지난해 말 비상대책을 발표했다. 근무체제를 ‘12시간 맞교대’에서 ‘8시간 맞교대’로 바꿨다. 종업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잔업이 줄면서 급여가 25%가량 감소했다. 너무 많이 줄어 회사가 월 40만원을 얹어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지만 종업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근로시간이 줄었지만 이 과정에서 승자는 없었다. 회사는 생산량이 줄어들었고 근로자는 임금이 삭감됐다. 정부에선 3조원의 일자리안정자금이 최저임금 상승의 어려움을 덜어줄 ‘특효약’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들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즐비하다.
새해가 되면 경영자들은 으레 거창한 포부를 말한다. 공격경영, 투자 확대, 해외 시장 개척 등이 단골 메뉴다. 하지만 중소기업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신 ‘현상 유지’ ‘살아남기’ 등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의욕에 넘치는 ‘기업가 정신’은 어디로 간 걸까.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의 혜택은 과연 근로자에게 돌아갈 것인가. 새해 벽두부터 중소기업인들은 복잡한 고민 속에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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