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라 기자 ] CJ그룹은 지난해 11월 대규모 임원인사를 했다. 이 중 ‘깜짝 인사’가 있었다. CJ제일제당 바이오본부장에 사상 처음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영업 출신 부문장을 임명한 것. CJ제일제당 바이오 부문이 기술적 측면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대대적 글로벌 마케팅에 나설 준비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 인민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1996년부터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에 몸담아온 하봉수 본부장(51·사진)이 그 주인공. 그를 만나 바이오 사업의 전략과 계획 등을 들어봤다. 그는 “핵산, 트립토판, 라이신 등 압도적 세계 1위 제품의 매출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먹거리가 될 특수·기능성 아미노산 개발에 에너지를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3조원. 바이오부문의 2016년 매출은 1조8016억원으로 전체 CJ제일제당 매출의 약 30%를 차지했다.
▶바이오 사업은 어떤 분야를 다루는 건가요.
“바이오 사업은 레드, 화이트, 그린 등 세 범주입니다. 레드는 제약사업, 화이트는 에너지와 친환경 소재, 그린은 미생물을 발효해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이죠. CJ제일제당은 그린 바이오에 강점이 있습니다. 발효를 통해 사료용 아미노산이나 식품 조미소재 등을 만드는 것입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발효기술은 미생물이 설탕을 먹고 내보낸 배설물을 채취하는 것이죠. 어떤 배설물을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다른 아미노산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 형태로 결합하다 보면 새로운 합성 아미노산이 탄생합니다. 동물 사료의 첨가제로 많이 쓰이는 라이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친환경, 미래 식량 안보와도 직결된다고 하던데요.
“모든 생명체는 단백질로 돼 있고, 단백질은 약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됩니다. 이 중 일부는 몸 안에서 합성하지 못하고 반드시 외부로부터 섭취해야 하는데 이를 필수 아미노산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미생물 발효를 통해 합성 아미노산을 만듭니다. 라이신은 가축 사료에 포함된 콩, 옥수수 등을 통해 섭취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100% 흡수되지 않습니다. 라이신을 사료에 첨가해 보충하면 체내 라이신 균형이 맞춰져 소화 효율이 높아집니다. 적은 양의 사료를 쓰면서 가축 배설물을 줄일 수 있으니 친환경 사업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미래 식량 안보와도 직결되는 분야입니다.”
▶아미노산 종류마다 시장이 다른 건지 궁금합니다.
“라이신은 체내 단백질을 높이고, 트립토판은 신경 안정 기능이 있습니다. 공장형 축사에서 스트레스받는 동물의 사료에 넣으면 효과가 좋습니다. 아르기닌은 체지방을 줄이고 가슴육을 발달시키는데, 발린은 어미 돼지의 유선 발달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합니다. 글로벌 사료 회사들이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의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요.
“CJ제일제당은 바이오를 미래 먹거리이자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보고 오랫동안 투자했습니다. 초기에는 일본 아지노모도 등 선두 기업을 따라가면 됐습니다. 2014년을 기점으로 뒤집혔습니다. CJ제일제당의 식품 조미 소재인 핵산, 동물 사료용 아미노산인 트립토판과 라이신이 압도적 세계 1위를 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따냈습니다. 라이신은 점유율이 30%가 넘고, 핵산과 트립토판은 5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5대 사료용 아미노산을 모두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바이오 기업으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자리잡았습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바쁘겠습니다.
“바이오 부문은 6개국에서 11개 공장을 가동 중입니다. 18개국에 영업 거점이 있지요. 직원 4600명 중 한국인은 270명, 전체 매출에서 국내 매출은 1000억원에 불과합니다. 해외에서 전량 생산하고 세계 80개국에 팔고 있어 글로벌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부문 시황이 지난 몇 년간 좋지 않았습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압박으로 2013년 이후 재무적 성과는 작았습니다. 중국의 추격도 원인이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서 바이오산업을 장려했고 공급과잉이 심각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최근 중국 정부가 환경 개선 정책을 벌이면서 생산량이 줄고, 이런 문제가 해소됐다는 점입니다.”
▶중국 사업을 계속한 것이 성과를 냈다고 봅니까.
“중국에는 2005년 라이신 공장을 지으면서 진출했습니다. 현재 핵산, 라이신, 트레오닌 공장 등을 운영 중입니다. 중국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결국 중국에서 터닝포인트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사인 일본과 미국, 독일 회사는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아예 진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이후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며 식품 등 수요가 커져 이익을 봤습니다. 또 중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우리의 기술 개발 속도도 2~3배 더 빨라졌습니다.”
▶지난해 인수합병(M&A) 등 공격적 투자도 했습니다.
“중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무리 지은 물고기가 흩어진 물고기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덩치를 키우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파트너를 찾아 손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난해 3월 중국 기능성 아미노산 업체 하이더를 인수하면서 40종 이상의 기능성 아미노산을 생산할 수 있게 됐고, 미국 바이오 벤처 메타볼릭스 자산을 인수해 연구개발(R&D)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올해도 이런 전략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성장 사업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기능성 아미노산입니다. 식품 소재부터 화장품, 생활용품, 비료 등 다양한 분야의 원료로 쓰입니다. 시스테인, 메티오닌, 글루타민, 아르기닌, 발린, 루이신, 이소류신 등이 이에 속하지요. 면역기능을 강화하거나 모발·피부 개선, 피로 해소 등 생체기능을 돕는 효과가 있어 매년 10% 성장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은 앞으로 5년간 대대적 투자를 할 계획입니다. 이 분야에서 2020년 매출 4000억원, 시장점유율 35%를 달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
▶바이오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미래 예측과 모험입니다. 신기술, 신소재인 만큼 불확실성에 투자해야 하고, 미래를 예측해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 게 어렵습니다. 1등 자리에 오른 분야일수록 그 고민이 더 큽니다. 아르기닌, 발린 등은 CJ제일제당이 없는 시장을 만든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바이오 사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바이오 사업은 같은 원료로 사료에서 첨단 의약품까지 확장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발효 기술은 석유화학을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유아용품에 쓰이는 고무를 발효 성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지금까지 기술 개발과 양산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창조적인 응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CJ제일제당은 연구소에 ‘응용센터’도 설치했습니다. 신물질을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하는 부서입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아이디어가 여기서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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