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낭트는 대서양 무역을 이끌던 프랑스 제국주의의 흔적이 깃든 도시다. 무엇보다 프랑스 조선산업의 영광이 서려 있는 곳이다. 2차대전 이후 전쟁으로 파괴된 해운 루트가 다시 열리고 세계 교역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유럽의 산업용 선박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 이들 선박의 절반 이상을 낭트와 인근 생나제르 지역의 조선사들이 맡았다. 낭트에는 조선소 수십 개가 들어섰고 이들이 고용하는 인력도 전성기엔 5만 명이나 됐다.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산업도시였던 것이다.
佛·日 조선업 개혁시기 놓쳐 실패
하지만 1956년을 정점으로 선박 주문량은 감소했다. 세계의 선박 건조량이 줄어들었으며 다른 유럽국가의 추격도 치열했다. 낭트 지역 조선사들은 호황기의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용한 노동인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기업 모두 노조가 강력했으며 인건비도 높았다.
프랑스 정부는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자 1958년 말 조선산업을 지원하는 법을 제정하고 1964년까지 49억프랑(당시 4억달러, 현재 기준 32억달러)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조선소 간 통합과 설비 감축을 요구했다. 정부 주도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조선산업 생산력을 유지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했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 조선산업은 중대한 실책을 한다. 대형 유조선이나 첨단 LNG선 등 투자에 뒤처졌다. 조선산업은 갈수록 쪼그라들다가 1980년대 들어 완전한 사양산업으로 변했다. 국가 보조금으로 연명하던 조선산업이 유럽경제공동체(EC·EU의 전신)의 결정으로 국가 지원마저 중단됐다. 프랑스 정부는 군사, 안보적인 이유로 몇 개의 조선소만 유지했다. 실업자가 시내에 넘쳐났다. 1980년대 낭트시는 심각한 경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조선산업 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1970년 이후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바통을 이어받은 일본은 근 30년간 조선산업 왕좌를 유지했다. 1980년에는 EC 회원국 총 생산량의 3배나 되는 선박을 건조했다. 프랑스는 1950년대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일본도 프랑스와 같은 경험을 한다.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했고 인력 확보에도 뒤졌다. 우수한 인력이 조선에서 떨어져 나갔다. 수주 잔량이 중국과 한국에 밀려 ‘제로’를 기록한 때도 있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본업인 조선을 접고 기계나 항공 등 다른 업종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가와사키중공업은 살아남았다. 기업과 종업원들이 한마음으로 뛴 결과였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 역작용 우려
가와사키는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 기업과 합병하면서 아예 중국으로 나가고 있다. 상선 건조는 70%를 중국에 맡기고 있다. 정부의 간섭보다 기업이 스스로 결정한 결과다.
한국의 2017년(1~9월) 상선 수주율은 전체 선박 수주의 45.9%나 된다. 중국(23.7%), 일본(7%)보다 월등히 높다. 하지만 이제 조선업 패권은 겨우 10년째다. 30년씩 영광을 누린 프랑스와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계속 1등을 유지하기 위해선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구조조정과 첨단 분야로의 재편이 적기에 이뤄져야 한다.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우조선 문제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거제를 찾아 조선업을 살릴 테니 구조조정과 혁신을 해달라고 대우조선에 주문했다. 채권단은 대통령의 발언이 구조조정 지연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 조선산업이 낭트가 될지 가와사키가 될지는 결국 기업에 달려있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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