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표준시의 정치·경제학

입력 2018-01-05 17:5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전 세계의 시간 기준을 그리니치 표준시로 확정한 시기는 1884년이다. 그때 각국 대표들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지구 경도(經度)의 원점으로 삼기로 했다. 대부분의 선박들이 항해에서 이 기준을 벌써 활용하고 있었기에 국제적인 합의가 쉬웠다.

지구의 자전주기(24시간)에 따라 경도 15도마다 한 시간씩 시차(時差)가 발생한다. 가장 많은 시차를 가진 나라는 프랑스다. 해외 속령이 곳곳에 퍼져 있어 시간대가 12개에 이른다. 국토가 제일 넓은 러시아는 11개다. 미국도 해외령이 많아 9개나 된다. 대통령이 새해 연설을 동부시간으로 밤에 하는 관례는 서부 시간대를 배려한 것이다.

각국 정부는 자국 내에서도 생활 리듬에 맞는 시간대를 따로 설정한다. 그러나 중국은 동서 시차가 5시간이나 되는데도 전국을 베이징 시간에 맞춘다. 1949년 공산혁명 이후 마오쩌둥이 집단통치를 위해 시차를 없앤 결과다.

우리나라는 대한제국 때인 1908년 세계 표준시를 도입했다. 한반도 중심인 동경 127.5도 기준으로 세계 표준시와 8시간30분 차이였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는 총독부가 도쿄 기준인 135도(9시간 차이)로 바꿨다. 광복 후 1954년에는 주권 회복 차원에서 127.5도로 환원했다. 그러다 1961년 다시 135도로 변경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제 교역 문제였다.

30분 단위 시차로는 선박과 항공기, 무역, 증권 시장 등에서 국제 시간과 맞지 않았다. 곳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현대적 시간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에도 원리는 비슷했다. 1434년 세종이 127도 기준의 한성시(時)를 만들어 쓰기도 했으나 명·청 시대 중국과 교역이 늘자 120도인 베이징시로 바꿔야 했다.

유럽 통합 후 서쪽 스페인과 동쪽 네덜란드가 중부 유럽 표준시에 ‘경제 시간대’를 맞춘 것이나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말레이시아가 같은 시간대를 쓰는 것도 교역을 위해서였다.

북한은 2015년 ‘일제 잔재 청산’을 이유로 표준시를 이전보다 30분 늦은 ‘평양시’(127도)로 바꿨다. 이후 여러 가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4일 남북 연락 때도 우리측이 오전 9시 전화했으나 받지 않고, 9시30분에야 전화를 걸어왔다. 벌써부터 ‘시차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차보다 더 심각한 건 시각차(視角差)다. 정치적 이유로 ‘30분 시차’를 쓰는 나라는 북한과 미얀마 등 10여 곳뿐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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