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플랫폼으로 에너지 등 시장 장악 우려
게임 질서 고착되기 전 '데이터 주권' 확보를
조환익 <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 >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각종 데이터가 폭포수같이 쏟아져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다. 생성되는 데이터는 산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디지털화는 더욱 빠르고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다. 2025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 발생량은 현재의 10배 수준인 163제타바이트(제타는 10의 21승)로 늘어날 것이라는데, 이는 전 세계 해변의 모래알보다 100배 이상 많은 헤아릴 수 없는 수치라고 한다.
이제는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다. 유용한 데이터를 얼마나 신속하게 많이 확보하느냐가 국가의 성패를 가름하게 된다. 구글이 선구자적 역할을 하면서 ‘구글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통해 800만 권의 책을 데이터화하더니 수년 전에는 천하무적인 ‘알파고’를 탄생시켜 데이터 위력에 설마 하던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그런데 작년 5월 알파고가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당초부터 좁디좁은 바둑계가 구글의 목표가 아니고 알파고나 후속 ‘알파고 제로’ 용도도 구글이 앞으로 계속 그려나갈 ‘빅픽처’의 맛보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구글은 중국에 ‘인공지능 연구센터’를 만든다고 발표하면서 “인공지능의 국경은 없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몇 배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소위 ‘데이터 제국주의’의 팽창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필자가 작년에 제프리 이멜트 당시 GE 회장을 만났을 때, 그는 “한국에서 제일 부러운 것은 방대하고 유용한 데이터 자원”이라면서 이 방면에서 한국과 광범위한 협력의사를 내비쳤다. 또 가끔 만났던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도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 전력분야 데이터와 소프트뱅크의 전산처리 기술을 결합해 세계시장에 같이 진출하면 좋겠다”는 제의를 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인공지능을 발전시켜 상업 각 부문의 솔루션을 만들어 나가는 글로벌 기업들에 매우 매력적인 데이터 보고로 인정받고 있다. 다양하고 역동적인 한국의 산업 구성과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및 싼 전기료 등이 그 배경에 있다.
데이터산업 자체의 시장 규모도 2020년까지 약 215조원에 달할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하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잘 처리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산업과 사회 시스템의 여러 부문에서 적용해 나갈 ‘게임 체인저’로서의 시장은 천문학적일 것이다. 그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수단은 독창적으로 만든 ‘데이터 플랫폼’이나 ‘블록체인’의 형태일 것이다. 플랫폼에 많은 데이터를 경제적, 효율적으로 담아서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고 편리한 솔루션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너지 분야에서 구글의 네스트(Nest)나 GE의 프리딕스(Predix), IBM의 왓슨(Watson), 또는 애플의 아이홈(i-home)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한국 기업이나 가정에 최적의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제공한다면 우리나라 에너지 시장은 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다. 토종업체가 설 땅은 물론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 인식은 너무나 한가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우리 데이터 플랫폼의 세계시장 진출은커녕 우리 데이터시장마저 잘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데이터 세계시장을 웬만큼 장악한 후에는 상품과 교역의 국제거래의 룰, 즉 게임 규칙을 정하고 데이터의 국제거래 질서유지를 위해 새로운 국제규범을 만들지도 모른다. 구미 국가들이 세계무역기구(WTO)를 만들었듯이 후발주자를 사실상 견제하는 것이다. 이미 각국에서 개별적으로도 국내 데이터 보호와 산업 발전을 위해 특단의 국가정책과 입법조치를 하고 있다.
이미 본격화된 데이터 전쟁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과감한 진흥정책과 적절한 규제, 데이터 표준화를 통한 원활한 생태계 조성, 전문가 양성 등 데이터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범정부적 특별대응이 시급하다.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료이자 연료다.
조환익 <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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