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잠재력 있는 적자기업, 상장 통한 자금조달 길 열려
3000억 규모 펀드 조성해 저평가된 코스닥기업 집중 투자
자본시장, 코스닥 중심으로 재편
[ 하수정/김우섭 기자 ]
초기 설비투자와 연구개발비 등으로 자본잠식에 빠진 혁신기업이 상장(IPO)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3000억원 규모의 코스닥 투자 펀드가 조성되고, 코스닥시장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한국거래소 지배구조가 개편된다. 금융위원회는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위한 종합 대책’을 11일 발표할 계획이다.
◆"자본잠식·계속사업이익 요건 폐지”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9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위한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혁신기업의 상장을 일률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계속사업이익 요건과 자본잠식 요건을 과감하게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적자 또는 자본잠식에 빠져 있더라도 성장잠재력이 충분한 기업은 코스닥에 상장시켜 자금조달의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코스닥 상장 요건에 ‘계속사업이익이 있을 것’, ‘자본잠식이 없을 것’이라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 조항이 사라지면 쿠팡, 티켓몬스터 등 외형을 키우는 데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느라 적자를 내고 있는 기업이나 제품 개발을 위해 초기 비용이 대거 투입되는 바이오 기업들의 코스닥 진입이 한층 쉬워질 전망이다. 그동안 기술특례상장 또는 ‘테슬라 요건’에 따라 적자 기업의 상장을 허용해주는 제도는 마련돼 있었지만 자본잠식 기업에도 상장 문호를 열어주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최 위원장은 상장요건을 다변화해 보다 많은 기업에 상장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세전이익, 시가총액, 자기자본 등 하나의 요건만 충족하면 상장이 가능하도록 코스닥 단독 상장요건을 신설하겠다”고 말했다. 또 “테슬라 요건으로 기업을 상장시킨 실적이 있는 주관사와 코넥스 기업의 코스닥 이전 상장 때는 상장주관사의 풋백옵션(공모가 이하로 주가가 떨어지면 주관사가 되사주는 것) 부담을 면제하겠다”고 덧붙였다.
상장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사후규제 장치도 강화한다. 최 위원장은 “상장 실질심사요건을 확대해 부실 상장기업을 조기에 적발해 퇴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유도하고 상장주관사의 이해상충 문제와 투자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보호예수(일정 기간 대주주 등의 지분 매각 금지) 의무를 확대하고 제재 기준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저평가 코스닥기업 투자 펀드 조성
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코스닥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3000억원 규모의 펀드도 조성된다. 최 위원장은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등 증권 유관기관과 민간이 함께 출자하는 3000억원의 ‘코스닥 스케일업(scale-up) 펀드’를 설정할 계획”이라며 “기관투자가의 코스닥 투자 유인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종합한 대표 통합지수를 개발하고, 새로운 지수에 기반한 상장지수펀드(ETF) 등 다양한 상품 출시를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최 위원장은 “자본시장의 모든 제도와 인프라를 코스닥시장 중심으로 정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 내 코스닥본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코스닥본부장이 겸임하고 있는 코스닥위원회 위원장을 외부전문가로 별도 선출하기로 했다. 코스닥위원장은 코스닥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이끌며 코스닥의 상장심사 및 상장폐지심사 업무를 독립적으로 심의·의결하는 등 권한이 대폭 강화된다. 새로운 코스닥위원장은 오는 3월 선임될 전망이다.
하수정/김우섭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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