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투리 잡히느니…" 강남 중개업소의 항변

입력 2018-01-15 17:08  

단속 경고에 '숨바꼭질 거래'


[ 김형규/민경진/양길성 기자 ] 15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중개업소. 불이 꺼진 채 문이 굳게 잠겨 있지만 안쪽을 바라보며 손잡이를 흔들자 조심스레 문이 열렸다. 중개업자는 좌우를 둘러보더니 기자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는 “단속을 피해 문을 닫고 있다. 어떤 매물 보러 왔나. 거래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손사래를 치며 완강히 인터뷰를 거절했다. 신문으로 창문을 도배해 안을 가려 놓은 또 다른 중개업소에서도 매매계약을 원하는 매수자와 중개업자의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부가 지난 11일 집값 급등 지역에 대해 고강도·무기한 현장 단속을 경고한 뒤 강남 일대 중개업소들이 일제히 문을 닫은 가운데 일부 업소에서는 숨어서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중앙상가의 중개업소 36곳은 12일부터 개점휴업 상태다. 자물쇠로 굳게 닫힌 출입문엔 우편물만 쌓여 있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 중개업소들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압구정동 S공인 관계자는 “언제든 단속 소식이 들리면 문 닫을 준비가 돼 있다”며 “출입문 앞에 놓아둔 명함이나 인터넷에 올려둔 전화번호 등을 통해 문의가 오면 카페나 오피스텔 등에서 암암리에 거래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내 상가들 역시 12일부터 30개 업소 중 70% 가까이가 문을 닫았다. 중개업소들은 네이버 밴드 또는 연락망을 통해 서로 상황을 공유한다. ‘××일 OO동에 단속 떴습니다. 국세청도 같이요’라는 소식이 뜨면 건너편 동(洞) 중개업소들까지 모두 문을 닫는 식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선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문을 닫지 말고 당당하게 조사받으라”는 의견을 회원들에게 전달하고 있지만 현장 중개업소에선 “작년에도 그랬듯 실적 올리려고 괜한 꼬투리만 잡을 게 뻔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중개업자는 “중개업소만 들쑤셔서 집값이 잡힐 것 같으냐”며 “집값과는 상관 없는 현금영수증 발행 등 경미한 위법사항까지 다 단속하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보경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지도단속실장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부 현장 단속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집값 급등의 원인은 중개업소가 아니라 분양권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 집값을 담합하는 일부 매도자들”이라고 말했다.

김형규/민경진/양길성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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