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에베르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급진 공화파를 이끈 선동가형 정치인이자 언론인이었다. ‘상 퀼로트’로 불리는 중하층 시민을 혁명에 가담시키기 위해 글을 ‘무기’로 삼았다. ‘르 페르 뒤셴(뒤셴 영감)’이란 신문을 만든 그는 두 가지 글쓰기 원칙을 세웠다.
첫 문장을 막말과 욕설로 시작하고, 중하층 시민들도 별 어려움 없이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단어와 단문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문예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거친 말들은 주위를 환기시켰고, 선동적인 단문은 대중을 파고들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단문체는 이후 정치 선동 선전 글의 대표적 형식이 됐다.
조지 오웰은 정치와 영어란 책에서 “은유 등 수사적 표현을 피하고, 간결하고 분명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했다. 정치인들이 언어를 모호하고 길게 늘여서 구사하는 것은 본심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게 오웰의 견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잇단 거친 행동, 막말로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막말 정치’는 단순한 말 실수가 아니라 고도로 기획된 ‘전략’의 일환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에베르와 오웰을 연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 정치’를 통해 10세 정도 아이들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단문을 사용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건 그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똥통’, ‘더러운 거지소굴 같은 곳’ 등의 뜻을 가진 ‘싯홀(shithole)’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1일 상원 의원들과 만나 이민법 관련 논의를 하던 중 “왜 아이티와 아프리카 국가들 같은 ‘싯홀’에서 온 사람들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사용한 단어가 아니다”며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관련국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싯홀’ 발언은 한국의 지나온 과거를 생각나게 한다. 건국 초기 “한국의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냉소까지 받았다. 그러던 한국이 헐벗고 굶주리던 나라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성장했다. K팝이 현대 대중문화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도 인기몰이를 할 정도로 국가이미지가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면 나라의 운명은 언제든 급전직하할 수 있음을 아르헨티나와 그리스가 보여준다. ‘대한민국’이 세계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받아들여지는 국가 브랜드로 자리잡도록 힘을 쏟아야 할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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