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프랑스·중국 부동산 고평가 추세…한국, 서울 강남 외 침체 우려
역자산효과 예상 '인구절벽론'…변화된 미국 통화정책 무시 '한계'
자산시장 충격 감안, 주택대출금리 급상승 않도록 관리해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지난 한 해 세계와 한국 부동산 시장은 ‘하우소포리아(housophoria=house+euphoria)’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다. 하우소포리아란 부동산시장이 계속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부동산 투자자의 심리가 과도한 안도감과 희열감에 빠져드는 현상을 말한다. 골디락스, 유토피아라는 용어가 이때 등장한다. 하지만 하이먼-민스크의 리스크 이론이나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에 따르면 부동산이 상승기에서 하락기로 돌아설 때는 반대의 경우(하락기에서 상승기)와 달리 어느 날 갑자기 ‘순간 폭락(flash crash)’이 동반된다.
새해 들어서자마자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는 세계와 한국 부동산시장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현재 가격 수준에 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부동산 가격은 구입 능력 면에서 주택가격비율(P/I·Price-Income Ratio)과 투자수익 면에서 주택수익비율(P/R·Price-Rent Ratio)로 평가한다.
P/I는 주택 등 부동산 가격을 연간 가구소득(이자 등을 뺀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것으로 과거 평균 수준에 비해 높으면 현재 부동산 가격이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된 것을 의미한다. P/R은 주택 등 부동산 가격을 연간 임대료로 나눈 것으로 P/I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비해 높으면 상대적으로 고평가됐음을 뜻한다.
P/I를 살펴보면 영국, 프랑스 부동산 가격은 장기 평균치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 기준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P/I는 장기 평균치를 각각 30%, 20% 이상 웃돌아 거품 붕괴가 우려되는 수준이다. 최근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독일의 경우도 P/I가 장기 평균치에 근접하고 있다.
중국은 1990년 이후 이어져온 고성장으로 부동산 가격이 가계소득에 비해 감소해오다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세로 전환됐다. 일부 지역은 장기 평균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한국은 날로 심해지는 차별화 현상을 반영하듯 전국적으로는 P/I가 감소하고 있어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침체 가능성이 우려된다.
韓 주택수익비율 상대적 안정세
P/R을 살펴보면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장기 평균치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국이 가장 높아 오래전부터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 독일은 아직까지 장기 평균치를 밑돌고 있으나 최근 들어 상승세가 더 빨라지면서 장기 평균치에 육박하고 있다. 이르면 1월 중 장기 평균치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한국의 P/R은 장기 평균치를 웃돌고 있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중국은 작년 말까지 가파른 상승세가 이어져 거품 붕괴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고평가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진핑 정부가 ‘고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성장 대책의 우선순위를 바꾼 가장 큰 이유다.
2018년, 무술년이다. 3년 전 여름 휴가철에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된 《인구 절벽(The Demographic Cliff)》에서 저자 해리 덴트가 “한국 부동산(특히 강남 지역) 시장이 장기 침체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본 바로 그해를 맞았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과 맞물려 덴트의 예측에 대한 공감대와 우려가 높다.
덴트가 부동산시장 앞날을 예측하는 데 즐겨 쓰는 기법은 ‘인구통계학적 이론’이다. 한 나라의 계층별 인구 구성에서 자가 소유 의욕과 안정된 노후생활을 위해 부동산을 본격적으로 매입하는 자산계층(2006년 《버블론》에서는 35~55세, 《인구절벽》에선 45~49세)이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부동산시장 예측에 관한 한 정확하다고 평가받던 덴트는 2010년을 기점으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경우 미국 부동산시장과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비용을 충당할 재원이 충분치 않아 보유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역(逆)자산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주가가 경기에 1년 정도 앞서가는 점을 감안해 2009년은 자산분배 전략을 수정해야 할 중요한 해로 지목했다. 2010년 이후 미국 경기가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2009년에는 그때까지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인 중에는 주식을 전량 처분한 투자자가 의외로 많았다.
올해가 부동산 장기 침체 원년?
하지만 이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 경기는 2009년 2분기 이후 지금까지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회복 국면(최장 회복기는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이 지속되고 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9년 3월1일 7300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26,00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처럼 은퇴 이후 삶의 수단으로 주식 보유 비율이 적은 우리로서는 인구통계학적 이론은 최소한 자가 소유(특히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시장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1960년대 이후 최소한 이명박 정부 출범 2년까지 세대가 지날수록 자산계층(베이비붐)이 두텁게 형성됨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한 단계씩 뛰었다.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이후 자산계층(197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에코붐 세대)이 받쳐줄 가능성이 낮다. 특히 핵심 자산계층인 45~49세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18년 이후 한국 경기와 부동산시장은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인구절벽’의 주된 내용이다.
덴트의 주장은 미국의 위상을 너무 높게 본 것이 단점으로 지적돼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걸 교수는 이민법 등을 손질해 해외 고급인력을 적극 유치하면 미국 경기와 주식, 그리고 부동산시장이 얼마든지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글로벌 해법(global solution)’을 제시해 반박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관할 대상이 바뀐 점을 무시한 한계도 갖고 있다. 인구통계학적 예측기법이 맞으려면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의 신념대로 통화정책 관할 대상에 자산시장 여건이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그린스펀 독트린).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자산시장을 포함시켜 통화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버냉키 독트린).
금리 인상 속도가 관건
버냉키 독트린대로 통화정책을 추진할 경우 인구통계학적 이론에 따라 부동산과 같은 실물투자 수익률이 낮게 예상되더라도 완만한 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차입 비용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막을 경우 거품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재닛 옐런 Fed 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점진적인 출구전략을 가져가는 이유다.
덴트의 ‘인구 절벽에 따른 2018년 이후 한국 부동산시장의 장기 침체론’은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 완만한 금리 인상 등으로 주택대출금리가 너무 빨리 올라가는 것을 잘 대처해 나간다면 2년 전 5대 국내 시중은행장이 예측했던 집값 15% 폭락(본지 2016년 12월13일자 A1면 참조)과 같은 현실이 닥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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